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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하늘의 초록별을 닮은 꽃

[완도의 자생식물] 129.반디지치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0.01.03 13:41
  • 수정 2020.01.0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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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세상을 보기 시작했을 때 너의 즐거움은 나의 행복이었지. 너의 봄길을 보기 위해 나는 풀씨 하나 움켜잡았지. 그 풀씨 하나 지구를 떠나지 않고 맴도는 일은 뜨거운 사랑으로 하여금 너를 지키는 힘이 되었지. 더욱 더 커져가는 사랑은 너를 껴안을 가슴만큼 눈물이었지. 한때 고향을 떠나는 게 진리였지. 

그러나 고향의 작은 풀꽃을 바라보는 일이 그 속에 크나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지. 논둑길, 밭둑길 따라 피는 작은 풀꽃들이 아가들의 눈빛처럼 아름다웠지. 작은 풀씨 하나 맴도는 세상. 

길가에 작은 풀꽃 하나 피어날 적에 내가 거기에 있을 줄이야 미처 몰랐지. 세상은 바람 불고 추워도 풀꽃 하나 피워낼 자리만 있으면 그곳이 나의 그리움이고 기다림이지. 이제야 고통을 이겨 낼 힘이 생겼구나. 그 많은 봄날을 이제야 봄날이구나. 

기쁨과 설움이 서럽게 섞어지는 날이 이제야 음악이 되는 구나. 젊은이여 좀 더 살아보자. 기쁨이 기쁨으로 되는 날. 슬픔이 슬픔으로 되는 날. 모두가 생에 필요한 것들이고. 그리움 속에 슬픔이 있고 기다림 속에 애틋한 사랑이 있으니 이곳이 정녕 나의 기쁨이라. 화려하게 봄 길을 가는 것보다 가물가물 뱃길을 가자. 그곳이 사랑과 정열이 넘쳐난다. 고난의 고개를 넘고 넘자. 넘실거리는 물결처럼. 청초한 풀꽃과 반디지치꽃으로 핀 초록별을 유심히 보자. 

제주도, 남도에서 서식한 반디지치는 봄밤의 하늘에서 초록별을 닮은 꽃이다. 양지바르고 바람이 잘 통하는 데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주로 사람들이 다니는 산길에서 볼 수 있다. 

이 꽃은 여러해살이풀이고 억센개지치, 깔깔이풀이라고도 부른다. 줄기는 15~25cm이며 꽃이 핀 후에 땅으로 낮게 가지가 뻗어서 땅에 닿는 곳에서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다음 해에 새롭게 싹이 난다. 꽃은 5~6달에 피며 지름은 15~18mm로서 진한 자주색이고 꽃받침은 녹색이다. 꽃과 뿌리가 검붉은 자주색을 띠고 있어 자초, 지치, 지근으로 부른다. 뿌리는 예로부터 자주색 물감으로 천이나 식료품을 물들이는 데 염료로 사용됐단다. 피부병, 혈액순환 촉진, 변비, 화상, 습진, 동상에 신비의 약으로 효험이 있다고 한다. 

야생화는 우리가 사는 토양에 길들어져서 그 친근함이 인간의 생로병사와 같다. 이들도 생명체를 달고 우리 인간의 고진감래를 도왔다. 반디지치 꽃 역시 우리 곁에서 피와 눈물이 된다. 어렵고 힘든 민중의 삶의 질곡에서 이들은 약이 되었고 눈물 섞인 희망이 된다. 풀꽃처럼 작은 세상이 오히려 진솔한 소망이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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