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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9둥이

[에세이] 박소현 / 횡간보건진료소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1.03 13:31
  • 수정 2020.01.0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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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 횡간진료보건소장

진료소 건너편에 멸치건조장이 있다. 건조장 입구에 검정 대형 고무통을 개조한 집이 있고, 그곳엔 지나가면 나를 보고 꼬리치던 흰색 진돗개 한 마리뿐이었는데 어느 날 보니 새끼들이 생겨 대가족이 된 것이다. 근처에 미처 가기도 전에 불은 젖으로 달려 나와 새끼들이라도 집어갈까 계속 짖어댄다. 언제 낳았느냐 여쭈니, “소장님! 몽(내가 키우던 강아지 이름)이 집에 보내고 허전하시면 새끼 한 마리 키우실래요?” 하신다. 여차여차 사정을 들어본 후 요약해본다.

“형님! 우리 개가 이상해요. 밥도 안 먹고 그제부터 집에 들어가서 안 나와요. 배가 방방하고...”

막걸리를 꿀떡하니 삼키던 영일이 형은 터져 나오는 웃음에 막걸리를 뿜으려다 참으며,

“너 미역국 끓여라! 우리 개 오늘 새끼 4마리 낳았다. 누렁이 둘에 흰둥이 둘.”

종준이는 안주를 집어 입에 가져가며 의아해 묻는다. “형네 개가 새끼 낳았다는데, 왜 내가 미역국 끓여요?”

영일 형은 두고 보라 하며, “내가 윗집 형님네 누렁개 그놈 목줄 풀려서 우리 집에 와서 우리 개한테 해 분 거 봤어. 얼척 없어서 돌 던지니 느그 집 쪽으로 달려갔어. 잘 봐봐, 오늘 내일이여.”

켁! 하는 소리와 함께 종준이 입에 들어갔던 멸치 조각이 스프링 달린 듯이 튀어나와 버렸다. 더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던 종준이는 서둘러 멸치건조장으로 갔다. ‘설마! 우리 초롱이는 이제 한 살도 안 먹었는데. 그럴 리가 없지.’

해져서 들어가면 꼬리 흔들고 반기는 초롱이 대신 어디서 새끼고양이 낑낑거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불길한 예감을 떨치려고 확인을 위해 초롱이 집 앞으로 가자, 생전 처음으로 으르렁거린다.

“쯧쯧쯧 괜찮아! 어디 보자.” 다독이며 안을 보니, 저게 뭐야? 주먹만 한 꼬무락지들이 옹실옹실... 흰색 누런색 “엄마야!”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게다가 영일이 형네보다 하나 더 있는 것이다.

종준이는 새끼들이 귀엽기보단 화가 난다. 초롱이는 자기도 어린것이 어미라고 젖 물리고 앉아 있는 꼴을 보니.

미역을 찾으며 물을 끓이며 영일 형네 전화번호를 누른다.

“형님! 우리 집도 낳아 부렀어라. 와따 속상하네. 우리 초롱이 곱게 키울라 했는디. 그 나쁜 놈이 미성년자까지 봐부렀당께라. 내일 그 집 마당에다가 그 새끼 닮은 노랑이 세 마리는 가져다 땡겨불라요. 왐마 성질난 그! 그라고 기왕 할라믄 동네 훈련 잘된 진돗개도 많은디 하필 고놈이 우리 초롱이를!”

영일 형은 웃으며 종준이에게 안 그래도 자기도 아비 닮은 노랑이 둘은 그 집 마당에 가져다 두고 오려 했는데 잘 되었다 하며, 내일 함께 가자고 농을 치며 웃더란다.

사실 섬마을에서 어린 생명을 보는 일은 정말 귀하다. 아기가 태어날 일도 거의 없고 번식력이 좋은 들고양이 새끼나 어쩌다 볼 수 있을까 강아지가 무려 아홉 마리나 같은 날 태어나다니, 동네에선 경사라며 귀여운 강아지들 소식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강아지 주인어른들은 처음에는 갑자기 불어난 식구에 사료는 어떻게 다 사서 먹여야 할까 걱정하시더니, 보름쯤 지나 눈을 뜨니 5일장에 가져다 파시라는 나의 권유에 손을 저으신다. 동네 어르신들이 혼자 살기 적적한데 잘 되었다 하시며 한 마리씩 가져가고 싶어 하신단다. 횡간도의 이색풍경 중 하나가 개를 키우시는 주민 대부분이 목줄을 채워 매일 하루 두어 번씩 산책하신다. 시골에서도 이제는 개를 집만 지키게 하는 목적이 아니라 반려견으로 인식하고 키운다는 증거다. 9마리 모두 동네 어르신들의 말벗이자 가족으로 많이 사랑받으며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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