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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해 보다도 너를, 널 사랑했었다고!

[에세이-고향 생각] 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2.30 10:07
  • 수정 2019.12.3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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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소리없이 너는 내 곁을 떠나가고 있었다. 너를 맞이하던 그 감동과 흥분은 아직도 내 안에서 전율하는데, 나는 벌써 네게 작별을 고해야 하는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의 2019년! "안녕!" 안녕이라 말하기 전에 고백하고 싶었다. 그 어느 해 보다도 너를, 너를 많이 사랑했었다고......

한 해를 떠나 보내고 또 다른 해를 맞이하는 이 세모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의 마지막 계절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가 남겨주었던 감동, 맨날 술만 마시고 뻥만 치던 늙은 화가 베이먼이 혼신을 다해 그려낸 마지막 작품은 죽음을 향해 치닫던 한 생명을 마침내 살리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남겨두고 떠나 간 마지막 잎새처럼 암병동의 차디 찬 담벼락을 어루만지며 떠듬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벼랑 끝에 홀로 서 있는 누군가에게 따스한 온기라도 전할 수 있을 거라는 설레임 때문이었다.

12월에 접어 들면서 주위는 크리스마스 쇼핑으로 모두들 들뜨고 분주하기만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선물을 사야 할까? 나 역시 많이 망설이고 있었다. 이제는 둘 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넉넉한 연봉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떤 의미있는 선물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만난 이어령 산문집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에서  '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최초의 시요, 드라마였으며,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 책이었다. 언제나 나에게 있어 진짜 책은 딱 한권이다. 이 한권의 책, 원형의 책, 영원히 다 읽지 못하는 책, 그것이 나의 어머니다.' 라고 그가 말했다. 나는 이 의미들을 아리도록 공감하며 내 가슴은 울먹이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도 <어머니>는 영원히 다 읽지 못하는 책, 꿈 속에서라도 찾아가 읽고 또 읽고 싶은 책, 읽을 때마다 나를 감동시키는 단 한 권의 책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처럼 어린아이 같기만 한데, 이제는 벌써 두 아이를 성장시킨 어머니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어머니로 기억될 수 있을까?

병동에서 가족들을 위해 천사를 만들고 있는 환자를 보고, 나도 천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다는 오너먼트로 장난처럼 만들 계획이었는데, 하나 둘 만들다가 문득 우리병동의 암 환자들을 떠 올리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온 가족이 모이는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 날에 병동에서 암과 싸워야하는 그들에게 따스한 온기라도 전할 수 있다면, 아니...... 방긋 미소라도 지을 수 있게 한다면, 나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거 같았다.

오랜만에 집에 온 딸 아이가 내가 만들어서 나란히 세워 둔 많은 천사들을 보고 깜짝 놀라 나에게 묻는다. "으응~ 우리병동 암 환자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려구~"라는 엄마 말에 눈물을 글썽이며 "아~~ 진짜~!"하며 감동한다.

'한 알의 진주 속에는 생명의 병과 그리고 투쟁, 그 아픔의 결정이 숨어있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그 싸움 속에서, 그 아픔 속에서, 그 부패 속에서 도리어 번득이는 하나의 영원한 진주알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진주의 아름다움은 우리들에게 생명의 한 변주곡을 침묵의 언어로 속삭이며 들려준다. 그래서 진주의 빛은 영혼의 빛을 띠고 있다.' -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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