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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인식부터 해결까지 지역이 주체”

하승창 전 수석이 바라본 도시재생 “경제 넘어 도시문제 해결해야”

  •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 입력 2019.12.20 14:56
  • 수정 2019.12.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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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시민운동은 중앙 집중 방식일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제가 몸 담았던 경실련 같은 조직을 예로 들어도 중앙이 있으면 지역에 지부가 있는 형태죠. 지역의 구체적인 문제가 중심이 아니라 중앙의 의제를 지역에 그대로 가져다 놓는 방식. 구체적인 삶의 문제는 작아도 제도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많았으니, 타당한 측면이 있었어요. 다만, 이제는 중앙 조직의 역할이 기존과는 달라졌다고 봅니다. 지역의 좋은 사례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중앙 차원으로 끌고 오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중앙 조직이 필요 없는 게 아니라 역할이 달라진 거죠.”하승창 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이 지난 7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은 시민운동과 사회혁신에 대한 확장된 고민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 17일 완도를 찾았다. 목적은 완도문화원 3층 증축 기념 인문학콘서트였지만 행위보다는 그가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였다. 그것이 바로 ‘도시재생’과 ‘혁신’이었기 때문이다. 

하 수석은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을 그만두고 떠난 베를린에서 7개월 경험을 먼저 이야기했다.

“베를린 파트너스(베를린 경제 진흥기관) 국장이 자랑스럽게 말하더군요. 우린 이렇게 오래된 공간에서 혁신을 꿈꾼다. 베를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자신감은 대단했어요. 저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는 1km가 조금 넘는 분단의 장벽인데, 분단과 관계된, 통일에 관계된 그림을 그 벽에 그리게 했다. 분단의 장벽이 있던 자리가 아닌 다른 공간, 즉 갤러리가 됐어요. 비영리 재단이 운영하는 그 곳은 오래된 공간에서 혁신을 꿈꿔서 다른 걸 만든 일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죠. 거의 100년 된 ‘바빌론 극장’도 마찬가지에요. 거기서 100년 전 만든 무성 영화를 트는데, 현대의 오케스트라가 라이브로 연주합니다. 

당시 영화는 SF 소재였는데, 100년 전 만든 SF 무성영화에 오케스트라 라이브 음악이라니. 이 경우는 공간만이 아니라 콘텐츠 자체를 바꿔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요”

이어 하 수석은 그런 의미에서 ‘문화비축기지’가 안타깝다고 회고했다. “거길 ‘점거’하고 있던 문화 기획자들이 있었어요. 이 친구들과 그 공간을 연결했으면 스토리가 남았을 텐데, 그들을 경계 밖으로 밀어냈다. 스토리를 밀어낸 셈이 됐고, 그러다보니 앞에 석유비축기지와는 관계없는 다른 공간이 덜렁 생겨버린 것 같다.”

석유비축기지를 문화비축기지로 만든 주체가 행정보다 공동체나 커뮤니티면 스토리가 훨씬 풍부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서울시에 있을 때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였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행정이 민간을 신뢰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거 같다. 민과 관은 서로 못 믿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각자의 자기 방식대로 일하면 불신은 계속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하 전 수석은 되묻는다. “접점에서 서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감할 수 있는,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야 한다고 본다. 이 공간은 물리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물론 독일에서도 시행착오는 있었겠죠.”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에서 정무부시장으로 도시재생과 혁신프로그램을 이끌었던 하 수석이 도시재생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떨까.  “청계천 같은 경우 엄밀히 말해 재생은 아니죠. 없앤 걸 찾아내고 복원한거니. 해외에는 기존 건축을 허물지 않고, 지금 사람들의 변화에 맞춰 바꾸는 경우가 많다. 재생은 단순 복원이 아니라, 그 스토리가 담겨있는 삶의 이야기를 찾아서 지금과 연결하는 방식을 택하는 식이죠. 앞서 말했듯, 베를린을 보면 문화예술인들이 특정 공간을 점거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를 통해서 자기네들 스토리를 유지해나가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옛날 거를 찾아 끼워 맞추려고 하니까 지금 시민들이 차이(갭)을 많이 느낀다. 지역의 오래된 도시도 원래 있던 걸 쓸어내고 높은 건축물을 세우는 경우가 많아서 아쉽다. 건축가들이 ‘공간의 밀도’라고 부르는 표현이 있어요. 건물이 낮으면 옆으로 지나갈 때마다 뭔가가 걸리고 멈추게 되고, 그러면 문화나 예술이 풍성해진다는 건축가들이 얘기에 동감한다. 우리는 대량생산 체제에 맞는 방식이 가져온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쇠락한 도시를 경제적으로 풍성하게 만드는 일을 넘어서, 도시라는 단위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길을 모색하는 것, 그게 도시재생이라고 본다”

지역의 자립·자치에 관한 그의 관점은 어떨까. “예전에는 중앙에서 일괄 해결하려 했다면, 지금은 한 도시에서 해결하고, 그 성공사례를 수평으로 확산시키는 식이죠. 과거에는 지역에서 성공하면 ‘그냥 작은 데에서 잘 했네’ 했지만, 지금은 롤 모델이 된다. 사회 문제도, 지역마다 구체적인 상태와 조건을 따져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로컬, 지역이라는 건 사람이 사는 삶의 단위, 우리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단위이니 더 중요하다고 본다”

하 수석의 강연은 완도의 도시재생, 지역사회 혁신을 골몰이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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