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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누나야

[완도 시론] 정택진 / 소설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2.06 14:23
  • 수정 2019.12.0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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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진 / 소설가

윗목 모서리에 걸린 등잔대에는 초꼬지불이 켜 있다. 꼬마가 그 옆에 서 있고,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동생을 안은 어머니가 꼬마를 쳐다보며 앉았다. 평소와 달리 상에는 꽁보리밥 대신 흰 쌀밥이 놓였고 반찬도 너덧 가지나 된다. 초저녁에 상이 걸게 차려졌으니 제사는 아닌 듯하다.

“아들, 얼른 노래 한 자리 해 보니라.”

아랫목에 앉은 아버지가 꼬마를 재촉한다.

무슨 노래를 부를까. 귀 너머로 배운 ‘학교종’이나 ‘짝짜꿍’ 같은 노래가 있지만 그것들에서는 왠지 젖내가 난다. 그런 시시한 것들 말고 좀 세련된 것을 부르고 싶다. 두어 숨을 고민하던 꼬맹이는 노래가 준비됐는지 그예 두 손을 맞잡으며 자세를 바룬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꼬맹이는 살며시 눈을 감으며 노래 속으로 들어간다.

자기만한 꼬마가 엄마와 누나와 살고 있는 강변이다. 강은 잔잔히 흘러가고 강변에는 강만큼이나 예쁜 초가집이 옹크려 있다. 강은 엄니의 옷고름처럼 곱게 굽이졌고 초가지붕은 강의 굽이처럼 동그맣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초가집 앞에는 허리띠 모양의 모래밭이 강의 눈썹인 듯 길게 흐르고 있다. 석양이 비치어 모랫벌이랑 강물이 금빛으로 빛난다. 어디선가 자주 본 듯한 풍경이다. 붉은 해는 뉘엿뉘엿 수평선을 넘어가고 바다는 불이 난 듯 활활 탄다. 모래톱은 잇꽃 색 보자기의 길고 너른 주름이다. 꼬마네 동네의 해질녘 풍경이다. 노래의 풍경과 섬의 풍경이 똑땄다.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꼬마네 뒤란에는 담을 따라 조그만 꽃밭이 만들어져 있다. 꼬마는 거기에 해바라기랑 나팔꽃이랑 분꽃을 심었다. 해바라기를 사다리 삼은 나팔꽃 줄기는 지붕마루에 닿아 이엉을 타고 실핏줄처럼 퍼졌다. 햇살에 얼굴을 내민 보라색 꽃이 꼭 난쟁이 나라의 종만 같다. 노래 속의 초가집 뒤란은 갈대가 우거졌나 보다. 해바라기만한 갈대들이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며 바람의 노래를 연주하는갑다.

엄마냐 누나야 강변 살자

꼬마가 배에 힘을 주며 소리를 높인다.

강변의 꼬마는 누나와 함께 금모래로 집을 지으며,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주께 새 집 다오!” 하겠다. 엄마는 담 모퉁이에 기대어 오누이를 바라보고 있겠지. 석양은 강 저편으로 흘러내리며 붉다란 맨드라미 꽃잎을 풍경 가득 뿌려주겠다.

꼬마는 노래의 강변에서 빠져나와 살며시 눈을 뜬다.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도 눈을 감은 채이다. 아마도 물이 찐 저 아랫동네 모랫벌에, 노을은 져 꼭두서니로 붉은 그 모래밭에, 호미로 금을 그어가며 캐내던 하얀 무명조개와, 소금을 넣으면 구멍을 솟구치던 맛조개와, 갯벌을 헤적여 캐내던 바지락과, 씹으면 달착지근한 물이 나오던 기다란 진줄과, 모래톱의 석양에 어우러졌던 이웃들과, 그리고 생각하면 다사롭고 아늑했던 옛날을 거닐고 있는 모양이다.

방 안의 풍경에 초꼬지불이 다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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