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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바람은 그리움이 되고 바람의 부딪힘은 가을의 끝을 노래해

[완도의 자생식물] 122. 억새꽃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11.15 14:54
  • 수정 2019.11.1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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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서 더 아쉬운 가을날에 책장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던 '풍경'을 다시 들춰본다. 새빨갛게 바싹 마른 단풍잎을 발견한 기쁨이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작년 가을 산에 갔을 때 주웠다가 넣어 놓았던 걸 알게 됐지. 지난 가을날에 무심히 했던 일들이 지금 꽤 큰 감흥을 주더라. 올해에는 그 길로 다시 가서 단풍을 주워 책갈피에 넣어두어야겠다. 

내년 가을에  들춰보다가 우연한 기쁨을 또 얻겠지. 쌀쌀한 늦가을 바람도 억새꽃으로 가는 길은 부드러운 마음을 내려놓는다. 청솔가지 억센 바람도 억새꽃과 손을 잡으면 하얀 그리움이 되고 스쳐 가는 한 순간에 흔들림에는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느끼게 한다. 봄의 삐비꽃은 나의 유년 시절을 생각나게 하고 가을에 억새꽃은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은 마음이 일렁이게 한다. 바람 한 점으로 모든 슬픔을 토해내는 억새꽃. 마른 잎에서는 외로움이 깊어지고 그리운 마음에 억새꽃 부서지는 석양 녘에서는 시퍼런 하늘에 뜨겁게 불러 봐도 머물지 않은 너의 외로움이 있다. 서럽게 묻혀있는 붉은 노을이 아직은 너의 슬픈 노래를 듣지 못했다는 듯이 출렁이는 억새꽃을 어루만지고 있다. 가슴이 뜨거운 만큼 눈물이 많은 억새꽃은 어느 누구와도 끌어 안을 어울림이 있다. 황량한 언덕에 억새꽃은 외로운 사람을 더욱더 외롭게 하고 쓸쓸한 마음이 더욱 쓸쓸하게 한다. 꽃잎을 금방 여물게 한 갈바람은 그 부딪힘에서 가을의 끝이 보인다. 억새꽃과 비슷한 갈대는 같은 볏과의 다년생 식물이다. 

다년생 초본식물이란 겨울에 지상부는 말라죽어도 뿌리는 그대로 살아남아 다음 해에 다시 줄기가 나와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억새는 그 종류가 매우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10여 종 있는데 보통 억새라고 부르는 것은 자주 억새를 말한다. 자줏빛을 띤 줄기에 흰 억새꽃이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린다. 억새꽃은 갈대와 다른 점은 꽃이삭이 가늘고 덜 풍성하며 줄기가 매우 가늘고 키가 1~2미터 정도로 갈대에 비하여 작다.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억새꽃이고 바다 가까운 습지에서 갈대가 주로 자생한다. 마른 쑥대밭에는 쓴 냄새가 고독한 가을향기가 되고 억새꽃 바람 가는 데에서 그리운 사람을 또 그립게 하는 노란 들국화가 있다. 푸른 하늘 아래서 모두가 갈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니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물어본다. 마른 풀잎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변해가는 것일까? 억새꽃 흔들리는 들길에서 그렇게 흔들리는 게 마음인데 이때 따스한 커피가 생각나게 한다. 이래저래 흔들렸다가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 인생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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