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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타고 간 소녀

[에세이] 박소현 / 횡간보건진료소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0.18 11:41
  • 수정 2019.10.1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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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 횡간보건진료소장

옛날에 한 소녀가 살았어요.

아빠는 하늘나라로 가시고, 소녀는 낯선 곳으로 전학을 갔죠. 학교가 끝나고 하늘 보며 집으로 가는 소녀를 개구쟁이 녀석이 발을 걸어 넘어뜨렸어요. 소녀의 무릎에선 붉은 피가 흘렀어요. 소녀는 툭툭 털고 일어나 그냥 걸어가요. 피가 나는 것을 보고 요 녀석은 그제야 겁이 났죠.

다음날 교실에서 마주친 소녀는 어제 입던 꽃무늬 치마 대신 바지를 입고 소년과 눈이 마주치자 소리 없이 웃고는 자리에 앉아요. 소년은 소녀가 용서했나보다 더 미안해져서 소녀와 친구가 되었어요.

같은 방향으로 걸어 집에 가며 하늘 보고 걷다 소녀가 넘어지려 하면 잡아주고, 도시락을 먹을 때도 소년은 친구들 사이에 소녀 의자도 한 개 놓아주고 다른 친구들과도 친하게 해주었어요. 소녀는 얼굴에 웃음이 생기고 친구들과 제법 잘 어울렸죠.

그런데 소년을 짝사랑하던 다른 아이가 소녀가 미워져서 소녀를 놀리고 괴롭혀요. “쟤는 아빠가 없대! 쟤는 서울에서 나쁜 짓을 해서 여기로 전학 온 거래. 쟤랑 놀지 마라!”

소녀는 교실 뒤에서 자기를 향해 거짓말까지 해가며 왕따 시키려는 그 아이를 돌아보지 않았어요. 소년도 그리고 함께 도시락을 먹는 친구들도 그런 거짓말을 믿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바람이 있었죠. 그런데 같이 도시락 먹던 아이 중 한 명이 “진짜야? 무슨 나쁜 일?” 그러자 소년을 짝사랑하는 아이는 더 신이 나 거짓말을 자꾸 늘어놓아요.

다음날이 되자 같이 도시락을 먹던 친구들이 소녀를 빼고 자기들끼리만 앉아요. 소녀가 함께 앉을 수 없게 의자를 다닥다닥 붙여서. 소년은 화가 나서 “그럼 나도 너희들이랑 안 먹으련다!”하고는 혼자 앉아 있는 소녀 옆으로 가 함께 먹어줘요. 소년의 책상에 쪽지가 하나 있어요.

‘네가 그 애랑 안 놀면 우린 그 애 안 괴롭힐게. 오늘처럼 그 애랑 같이 도시락 먹고 그러면 우리는 계속 괴롭힐 거야!’

쪽지를 읽은 소년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어요. 소년이 여느 때처럼 소녀와 걸어 집에 가는 길. 소년은 까불지도 않고 소녀도 여기 처음 온 날처럼 하늘만 보고 걸어요. 소녀의 집 근처로 오자 소년이 개미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해요. “내일부터는 점심 같이 못 먹는다. 그리고 집에도 따로 오자. 미안.” 이렇게 말하고는 빠르게 달려가 버려요.

소녀는 그 모습을 보고는 입을 꾹 다무는데 자꾸만 입술에 짭짤한 뜨거운 맛이 느껴져요.

방에 들어가 울다 잠든 소녀는 나무를 타고 오르는 꿈을 꾸어요. 키 작은 나무인 줄 알았는데 자꾸만 키가 커져서 계속 올라야 해요. 어느 순간 아래를 보니 덜컥 겁이 나요.

‘어떻게 다시 내려가지? 아빠... 무서워!’ 하자 갑자기 무지개가 하늘에 생기고 아빠가 무지개를 타고 내려오고 있어요.

소녀는 아빠에게 꼭 안겨 무지개를 타고 하늘나라로 가요.

점점 학교도 집도 보이지 않으려는데, 레고처럼 작은 소년이 눈가를 옷소매로 자꾸 닦으며 저러다 고개가 꺾일지도 모르겠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하늘로 치켜들고 소녀를 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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