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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사 시제에 다녀와서

[완도 시론] 배준현 / 고금주조장 대표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10.11 09:35
  • 수정 2019.10.1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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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현 / 고금주조장 대표

조선후기 어떤 까닭으로 고금도에 오게 된 어떤 사람들. 중앙정치에서 밀려 유배를 왔다거나 멸문지화를 피해 찾아든 고금도에 그들이 남긴 것은 유교의 학풍이다. 높은 학식과 빼어난 인격을 고금도 사람들은 받들고 따랐다. 선현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세우고 그 곁에 강당을 만들어 후학을 길러냈다.

고금도에 남아 있는 5개 원사(숭유사,영모사,덕암사,봉암사,덕산사)가 그것이다. 한 때 넘쳐나던 학동들의 글읽는 소리는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유학으로 존경을 받았던 여러 선생들을 추모하고 선생의 뜻을 기리는 제를 해마다 올리고 있다. 예전에는 유림들이 행사를 이끌었을 터, 지금은 노인회에서 주관하여 일을 치러내고 있다. 유학의 행동 양식이 사라져 가는 요즘 이런 시제를 보는 것은 낯설기만 하다. 홀기를 읽는 어르신의 애달픈 소리, 제관들이 허리를 굽히고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걸어가는 뜻을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사는 지역의 역사를 연구하고자 벗들과 모임을 활발하게 하던 때가 있었다. 고금도의 5원사에서 지내는 시제는 당장 보존하고 연구해야하는 중요한 인문학이었다. 어르신들이 제를 모시는 예법을 배우고 사당에서 모시는 선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공부했다.

영모사는 고금면 연동리에 있고 용남 홍병례 선생과 그의 제자 수암 배학연 선생, 화정 윤세용 선생, 세 분을 모시는 사당으로 해마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제사를 받든다. 영모사는 고금도의 5원사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다. 가까운 곳의 유림들이 찾아와 번성하였던 유학의 산실이었다. 제를 모실 때면 300여명의 찾아올 정도로 추모객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완도군향토유적 제18호로 정해 관리되고 있다. 

모사 시제에서 윤길상 형님을 만났다. 길상형님은 화정 윤세용 선생의 손자이다. 고금도에서 할아버지를 추모하는 제향이 있는 날 서울에서 천릿길을 달려온다. 벌써 10년째다. 그동안 길상형님의 어머니와 고모(화정선생의 따님)가 참여했다. 올해엔 파평윤씨 판도공파 종회장이 종헌관으로 참여하였다. 선현의 후손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무엇보다 큰 의미가 있다. 제사를 주관하는 고금도 어르신들에게 큰 힘이 된다.

길상형님과는 1년에 한번 만나는 반가운 인연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 이 문화유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길상형님은 완도군 문화재 담당직원과 꾸준히 통화한다. 영모사의 관리 운영방안을 얘기하고 하나 하나 이루어 나갔다.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되면서 관리가 잘 될 줄 알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사당 앞 계단은 허물어져 이번 시제때 어르신들이 힘겹게 오르내렸다. 위패를 덮는 함은 낡아 썩어 바꿔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사당옆에 있는 영모재의 보수 활용방안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 서당으로 쓰였던 곳으로 영모재라 현판이 붙어 있다. 옛 서당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존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옛 서당을 복원할 자원이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들은 뭣이든지 무너뜨리고 새로 지을려고만 한다. 안타깝게 사라져간 문화역사유적이 얼마나 많은가. 사라져가는 옛 것들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온고지신이라 했다. 영모사와 같이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학생들의 지역문화재 찾기, 문화유적가꾸기, 방학동안 서당을 운영, 지역의 유학자를 선생님으로 모셔 옛 학문과 서예, 예절교육같은 전통문화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면 좋겠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어르신들과 같이 하는 게 좋겠다. 유교 축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지역민들이 모두 즐길 수 있는 방법도 있겠다. 

지난한 향화. 올해도 노인회에서 시제를 준비하고 치러냈다. 해마다 스러지는 낡은 사당앞에서 자신들의 주름살처럼 깊은 한숨을 내쉰다. 사그러지려는 향화가 머지않아 새롭게 살아날 것이라 믿는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얘기한다. 산업화에 내몰려 본연의 모습을 잃고 각박한 경쟁사회에서 사라진 우리네 본모습을 하나 둘 되살려 내는 것,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란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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