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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엔 누가 장보고대사가 되기 위해 장보고 선단에 탈까?<2019 장보고 후예들과 떠나는 중국역사기행>
박주성 기자 | 승인 2019.10.07 10:30

뭔가 알맹이가 비었을 때 우리는 ‘앙꼬없는 찐빵’이란 말을 쓴다. 이번 장보고 후예들과 떠나는 중국역사기행의 마지막 일정인 장보고대사가 창건한 적산법화원 방문을 하지 않았다면 정말 이번 해외탐방은 ‘앙꼬없는 찐빵’이란 소리를 들어도 반박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위해 시내에서 적산법화원이 있는 석도까지는 버스로 약 1시간 30분을 이동해야 했다. 도착하니까 현지시각으로 9시 30분 정도였다. 먼저 일행들은 적산에 들어설 때부터 눈에 들어온 산 중턱에 위치한 ‘적산명신’을 둘러보았다. 더운 날씨라 전동카를 타고 적산명신을 보러 올라갔는데 동상이 위치한 곳에 올라가면 적산의 앞바다가 펼쳐져 있다. 올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청해진 완도바다와 너무나 분위기가 비슷하다. 잔잔하고 소박한 어머니 품과 같은 바다. 

다음 일정은 적산명신 바로 근처에 있는 장보고전기관 관람이다. 중국인들은 과연 장보고대사를 어떻게 기리고 있는 것일까? 우리 일행들은 대단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장보고전기관 앞 거대한 장보고대사 동상 앞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중화의식이 투철한 중국사람들이 유일하게 세운 장보고기념관을 둘러보러 일행은 발길을 옮겼다. 2007년 4월 27일 개관한 장보고 기념관은 해양진출과 무역으로 도아시아 번영을 이끈 장보고 대사의 이상과 위업을 기리기 위해 중국 영성시와 적산그룹이 석도적산풍경명승구 내에 건립한 시설이며 (재)한국해양재단에서는 전시물 등을 지원했다고 한다.

전기관은 총 5개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제1전시실 ‘꿈을 쫒아 당나라로’은 장보고전기관의 건립 이유와 장보고 대사에 대한 전체적인 소개로 이뤄졌고. 건립 이유가 장보고의 생애와 한국과 중국 간의 찬란했던 교류 문화를 재현하기 위해서였으며. 또 장보고 대사가 당나라로 가게 된 배경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제2전시실 ‘무령군 종군’은 장보고 대사가 당나라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각인시켰던 주요 활약상들을 볼 수 있는 전시실이이며 신라의 무역선을 타고 당나라에 온 장보고대사와 정년장군의 무령군 입대, 그곳에서의 활약상이 전시돼 있다. 무령군으로 이사도의 반란 진압을 성공했던 장보고 대사의 모습과 그 공적으로 소장에 오르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제3전시실 ‘적산과의 인연’은 장보고 대사가 법화원을 세운 것은 재당 신라인들을 결집하기 위해서였고. 법화원은 일년 내내 경전을 강독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고 한다. 838년에는 당나라에 온 일본 스님 엔닌 일행의 순례를 무사히 마치게 도와주었으며, 엔닌은 당나라 순례 여행기인 <입당구법순래행기>에서 장보고 대사에 대한 편지 내용과 그의 활약을 상세히 기록했다.

제4전시실 ‘청해진 부침’은 장보고 대사가 신라로 돌아와 설치한 청해진의 흥망성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실이다. 

제5전시실 ‘유구한 역사’는 한국과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장보고 관련활동을 소개하는 전시실이다. 


장보고전기관을 둘러본 후 적산법화원 방문은 어렵사리 성사됐다. 참가학생들은 장보고전기관 근처에서 간이 백일장 대회를 개최했다. 장보고대사가 창건한 적산법화원에서 그 후예들이 문예대회를 개최해 보자는 기획의도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뛰어난 작품들이 예년에 비해 많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신나했다. 

신흥사 지성스님을 대표로 일행을 꾸려 적산법화원 주지스님을 방문했다. 작년 사진화보집을 가지고 온 것이 도움이 돼 미리 연락을 못 드려 못 만날 뻔한게 크게 도움이 됐다. 올해도 지성스님은 완도 초청을 했으나 중국의 종교인들은, 특히나 적산법화원 같은 곳은 관광성이 크다보니 적산그룹의 미리 허락을 받아야 움직일 수 있다고 적산법화원 주지스님은 귀뜸해 줬다. 
신라원 중에서 가장 큰 법화원은 장보고 대사가 세운 불교 사원으로 창립초기에 법화경을 읽었다고 하여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신라와 당나라 간 교역이 늘어나자 산둥반도 일대에 신라인 마을인 신라방(新羅坊)이 생겼고 신라방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정신세계를 묶을 수 있는 종교시설이 절실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신라원인 것이다. 종교시설 역할뿐 아니라 신라와의 연락처, 신라와 일본에서 온 유학승에게 편의까지 제공했으니 당나라의 신라 타운인 셈이다. 

장보고전기관과 적산법화원 대웅전 사이 바로 위에 산길로 올라가면 장보고 기념탑이 있다. 이탑은 세계 한민족연합회 최민자 회장이 10만 불 자금을 투자하여 1994년 건립한 탑이다. 대리석으로 제작하였으며 정면 장보고기념탑이라는 글자는 김영삼 대통령의 친필이다. 기념탑 기단 부분은 남북으로 19m, 동서로 16m에 달한다. 15m높이의 두 개의 탑신은 서로 떨어져 있다. 2개의 기둥상단을 연결한 고리는 한중 양국의 우의를 상징한다고 한다.

마지막 여정이 끝나고 참가학생들 일행도 이제는 바다 건너 고향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집으로 가자는 말에 환호성을 지른다. 점심 때 화장실에 다녀왔다고 넉살 좋게 말하는 조한결 학생을 잃어버릴 뻔한 사건이 터질 뻔한 걸 제외하면 귀국길은 출국길보다 그래도 좀 수월한 편이었다. 

오후 6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완도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그동안 여행 다녀온 후기 감상문과 장보고 퀴즈대회를 통해 열띤 분위기를 이어갔다. 후기에서 대부분 일행이 공통적으로 얘기한 것은 말로만 듣던 장보고대사의 역사적 사실, 그 실체를 확인하고 왔다는 것이었으며, 젊은 인솔교사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여행을 다녀온다는 것이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써야 되는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는 자기 반성문 같은 것이었다. 

내년엔 누가 장보고의 후예로서 또 장보고 대사가 되기 위해 장보고선단을 탈까. (끝).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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