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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야우중(秋夜雨中)[완도차밭, 은선동의 茶 文化 산책 -81]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완도신문 | 승인 2019.09.27 10:05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올 해는 유독 비바람이 많은 듯하다. 강한 폭우와 태풍을 동반한 경우도 많았다. 아직도 추수하지 못한 벼들이 익지도 못한 채 쓰러져 있는 넓은 들판이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여기 저기 한 두 분 농군의 손길이 바쁘지만 쓰러진 벼를 세우기는 역부족일 듯 싶다. 이곳 다원도 예외는 아니다. 땅이 채 마르기도 전에 내리는 비에 차밭의 생초는 무성하여 이미 예초하고 전지한 차나무 위를 다시 덮고 있다. 어찌하랴! 자연의 섭리인 것을! 순리적으로 바라보고 쉼의 시간을 가져 본다. 때를 기다리며! 

그러나, 은선동에 내리는 비는 별유천지의 비경을 열어주어 비가 가져다주는 감각도 남다름을 느끼게 해준다. 더구나 다원의 차실채는 양철지붕이여서 빗소리에 매우 민감하고 약간의 비에도 그 소리를 통해서 빗줄기의 무게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 빗줄기의 무게 따라 느낌들도 다르다. 강도 높은 비바람일 때는 웅대한 대자연의 경외로움 속에 들게 하고, 안개비는 은선동의 신비한 경이로움에 흠뻑 젖게 한다. 하지만 묘하게도 토닥토닥, 또는 사부작 사부작 강약의 보슬비가 내릴 때면 깊은 그리움에 든다. 홀로여서 일까? 그래서 서로 떨어져 있는 소중한 인연들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 것일까? 낮 동안엔 이 아름다운 정경과 더불어 차 한 잔 나누며 선미를 맛보면서 유유히 법계를 노니는 도락을 한없이 누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님을 향한 그리움에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인 어인까닭일까?

문득, 고운 최치원의 추야우중이라는 시 한편이 떠오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을 바람에 괴롭게도 읊고 있건만, 세상에는 알아듣는 사람이 없구나. 깊은 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등불 아래엔 만 리 먼 길 외로운 마음이여! (추풍유고음 세로소지음 창외삼경우 등전만리심, 秋風唯苦音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이 작품은 <계원필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 귀국 후의 작품으로 본다. 중원에 진출하여 문장을 크게 날렸으나 귀국 후 고국에서 그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을 수 없고, 알아주는 사람 없는 세상살이의 뼈저린 고독과 만 리 밖 먼 곳을 향한 애절한 그리움이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고운의 쓰라린 고독의 심경을 보여준 글이라 하겠다. 한편, 귀국 후가 아니라 하더라도, 밖으로는 중원 천지에 큰 명성을 얻었으나, 내면적으로는 이역만리 고국과 고국에 계신 님을 향한 그리움에 얼마나 깊은 고독과 함께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청해진의 은선동 뜨락에 자리한 초라한 차실에서 안개비에 갇힌 채 차 한 잔 마주하며 느끼는 심경이 문득 최고운의 마음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인 까닭일까? 

뿐이랴? “지리산 화개동에는 ~ , 골짜기 안에 옥부대가 있고 ~ , 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이 언제나 찻잎을 늦게 따서 땔나무 말리듯, 솥에다 시래기국 끓이듯 삶으니 색은 탁하며 붉은 색을 띠고 맛은 몹시 쓰고 떫은 차를 만들어 마시고 있다. 이것이 바로 천하에 좋은 차가 속된 사람들의 손에 의해 버려진다 라고 하는 것이다.”라 하며, 통탄해 했던 그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결국, 다신전과 동다송을 지을 수밖에 없는 다성 초의선사의 심경도 문득 오버랩 된다. 은선동에 묵혀 사는 초로의 농군이 피우는 게으름에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않았을까? 세상에 차를 하는 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진정코 차를 만드는 이가 많지 않고, 제대로 마시는 이 또한 만나기 어려우니, 안타깝고 안타까울 뿐이다.

단지, 고운의 족적없는 대해탈의 자취처럼, 스승님의 유훈따라 은선으로 유유자적하고 싶음이여! 오직 홀로 차 한 잔 즐길 수 있으면 족하다. 천지공과 더불어! 차 한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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