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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게 퍼지는 그리움처럼 피어나네

[완도의 자생식물] 113. 궁궁이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09.06 13:00
  • 수정 2019.09.0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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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에 한두 송이 피어 있는 쑥부쟁이에서 약간의 눈물이 보인다. 초록이 전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데 가을 색이 보일 듯하다. 밤 풀벌레의 소리 끝에서 그리운 사람을 더욱더 그립게 한다. 

개울물 소리도 제법 깔끔하다. 그동안 모두 흩어져 있다가 가을이면 하나의 오감으로 함축된다. 한편 가을을 맞는 느낌은 매년 다르다. 생소하면서 낯설고 내 안에서 만남과 떠남이 교차하는 분위기. 

그래서 가을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시인이 된다. 

개울가에 물봉숭아와 고마리 풀 그리고 궁궁이들이 함께 모여 있다. 종은 다를지라도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여름날에 많은 물에도 쓸려가지 않았다. 뿌리 하나는 아주 연하다. 그러나 여러 개 모이면 물살을 거스를 정도다. 수많은 뿌리는 물살을 느리게 만들어 땅을 파이지 않게 한다. 또한 물속에서 산소를 내어 깨끗한 물로 정화한다. 한두 작물만 보아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생물과 물질은 원소로 구성된다. 초소 단위의 원소에서 주고받은 에너지는 종을 뛰어넘어 서로 유익한 존재가 된다. 

궁궁이는 미나릿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산골짜기 냇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큰 키의(80cm~150cm) 식물이다. 속은 텅 비어 있으며 특유의 냄새가 나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잎은 전체적으로 큰 세모꼴을 이루는데 깃털 모양으로 세 차례 되풀이해서 작게 갈라진다. 꽃은 8~9월에 흰 꽃이 핀다. 궁궁이는 야생으로 자라는 식물이고 천궁은 중국 원산의 약초용으로 재배한다고 한다. 

천궁과 궁궁이는 엄연히 다른 식물이고 천궁은 왜당귀(일본당귀)와 비슷한 잎을 가졌고 키도 30-60Cm 정도밖에 안 된다. 들에는 쑥부쟁이꽃이 풍성한 가을 들판을 노래하고 있다. 길 따라 내려오는 개울물은 먼 길을 떠나려는 듯 푸른 이끼도 눈물로 글썽이게 한다. 운명이라는 생명을 뿌리에 하얗게 서려 넣는 궁궁이는 만남과 떠남 그 순간만큼은 영원히 잊지 못해 하얀 그리움으로 피어놓고 있다. 산소와 질소 그리고 햇빛은 생명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준다. 일방적으로 받았으니 생명은 서로 주고받아라 하는 명제가 숨어있다. 물질과 생명은 끊임없이 에너지가 서로 오고 간다. 아름다운 숲일수록 많은 물질이 교환된다. 들길에서 이름 없이 피는 꽃들도 나름대로 나누고 산다. 지난날 덧셈만 했다. 이젠 나누는 즐거움이 더 크다. 마음을 한곳으로 집중하기 위해서는 나누어 줘야 한다는 것을 좀 살아보니 알겠다. 개울가에 궁궁이가 넓적하게 피었다. 꽃 하나로는 좁쌀만 하다. 그런데 이렇게 모여 피니 큰 꽃송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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