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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다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에세이-고향 생각] 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9.06 10:22
  • 수정 2019.09.0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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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퍼석거리던 한 여인이 라이딩을 시작하더니 콩닥콩닥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병원 일에 파 김치가 되어 돌아온 다음 날에도 아침이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문을 열고 나오면 싱그러운 아침햇살과 어우러진 라벤다 향기가 은은하다. 이 시간... 살아있음이 무한히 감미로워지는 순간이다.

나는 너의 두 손을 붙잡고 나비처럼 사뿐히 네 늘씬한 몸을 향해 날아 오른다. 너와 단 둘이 즐기는 이 아침나절의 짜릿함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나 보다! 어느 사이엔가 내 두 다리는 너와 완벽한 호흡을 맞추며 패달을 밟기 시작하였다. 끝 없이 펼쳐진 대지 위를 사색하며 은유를 즐기며 달리다가 문득, 나는 너를 처음 만났던 십대의 마지막 계절을 향해 다가가 보았다.

그 시절 우리집은 공동묘지가 바라다 보이는 작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다. 읍내로 부터 제법 떨어진 곳이기에 중고 자전거를 마련했는데 그때 자전거들은 왜 그렇게 체인이 잘 빠지곤 했는지, 손가락으로 걸고나면 시커먼 기름때가 손톱 밑까지 눌러붙어 지워지지 않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때때로 나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 길을 가다가 올라오는 덤프트럭과 맞닥뜨린 적도 있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길 가 개천에 빠지거나 넘어져 무릎이 찢어진 내 옷들은 이제보니 패션을 앞서간 빈티지였었다. 

그런 말괄량이 아가씨 시절에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제대로 사귀지는 않았지만 은근한 그의 눈빛이 과히 싫지는 않았는데, 그가 대학에 들어가더니 전혀 소식이 없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 일은 내가 처음으로 나 자신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나의 미래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고 싶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러나 나의 홀로서기는 계속되는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공부를 시작한다고 언니집에서 집안일을 돌보며 단과학원 등록을 막 끝냈는데, 아버지는 말기 위암 선고를 받으셨다. 공부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마지막 병상을 지키라는 큰오빠의 권유를 물리치고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다. 피눈물이 나는 가슴아픈 결단이었다. 아버지는 막내인 나를 걱정스러워하며 눈도 감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얼마전 지인께서 던진 한 마디 "다시 돌이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나는 내가 살아왔던 시간들에게 다가가 하나 하나 정성껏 어루만지기를 시작하였다. 부단히도 치열하고 또 치열하게 살아 온 나의 20대, 30대, 40대를 향하여 나는 스스로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다시 한번 더 그 절박한 상황들을 살아 보라고 한다면 나는 그렇듯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 낼 수 있을까?



이것은 비단 나 자신에게 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더 난감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지금까지 버티며 인내하며 살아 온 당신에게 주고싶은 나의 간절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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