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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인 불평등

[완도 시론] 박준영 / 법무법인 '새봄' 변호사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9.06 10:19
  • 수정 2019.09.1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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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 법무법인 '새봄' 변호사

군대 한 달 고참 배 병장이 사법시험 준비한다면서 여름 방학 때 고시촌으로 올라간다고 하길래, 나도 고시공부 한 번 해보자고 하며 덩달아 신림동으로 갔습니다.

법학 개념은 물론이고 책에 나온 단어들 마다 생소했습니다. 지금처럼 포털사이트를 통해 검색을 하던 시절이 아니었고 ‘서서(스위스)’, ‘오지리(오스트리아)’ 이런 단어는 법률용어사전에도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배 병장은 친절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편, 자기 때문에 제가 고시공부를 한 것으로 생각해서였는지, 늘 저를 걱정하면서 “박 병장, 집에 내려가야지”하며 고시공부를 그만두고 정신차리게끔 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배 병장은 저를 위해서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준 은인입니다.

배 병장은 지금 판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 때 이런 생각 많이 했습니다. 배 병장이 맡고 있는 사건의 수임의뢰가 들어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배 병장과 저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저는 ‘숨은 전관’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법조인대관에는 학교, 출신지역, 사시 기수 등이 연고관계를 고려하는 기준입니다. 같은 군부대를 나온 것을 누가 알 수도 없습니다. 이런 걸 광고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 건도 못했습니다.

사법연수원 동기 중에서 친한 검사가 있습니다. 이 친구가 맡고 있는 사건이 의뢰 들어오면 좋겠다 싶었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왔더라구요. 너무 기분 좋아서 나름 큰돈을 받고 수임했습니다. 곧바로 친구 검사에게 전화해서 사건 선임했다고 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이랬습니다.

“그거 안하면 안 되냐”

떼를 쓸 일이 아니고 저도 돈에 눈이 어두워 선임하긴 했지만, 의뢰인의 문제를 몰랐던 게 아니기 때문에 알았다고 하고 사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쉬웠습니다.

변호사 초반에는 성공보수에 눈이 어두워 주심판사를 잘 아는 사람을 통해 ‘기록 좀 잘 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기게 해달라는 건 아니지만, 이 또한 관계를 이용한 것이지요.

국선변호를 열심히 했던 이유 중에는, 국선변호를 열심히 하면, 가끔 들어오는 사선 사건에서 유리하게 판단을 해 주리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저도 우리 사회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세울만한 학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여부가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에 대해 조금 불만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가장 궁금하고 출신대학으로 능력에 대한 선입견을 갖습니다. 학벌을 중시하는 문화를 넘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조국 후보자 사태를 통해서 저처럼 관계 속에서 그리고 그 관계를 지향하며 살아 온 사람들이 ‘이제는 조금 바뀌어야 하고 나부터 더 노력하자’는 생각을 가졌으면 합니다. 관계로 인한 이익에서 멀리 있는 ‘소외받는 사람들의 울분과 상처’를 직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검찰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에서 일을 하면서 가장 화가 났던 부분은, 자신의 입신 또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을 위해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고 부족한 근거로 특정 방향으로 몰고 가며 정의를 이야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누구를 위한 과거사 조사인가 싶었습니다.

조국 후보자 사태를 보면서 우리 모두가 노력해서 바꿔야 할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봤습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이런 시민들의 공분을 그들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야권에서는 합의를 한 청문회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고, 여당 내에서는 조국 후보자를 두둔할지 여부를 내년 총선에서 자신의 입지와 연결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사태에서 정치인들의 발언이 과연 소신인지 의문입니다. 오히려 페이스북에서 진보, 보수를 떠나 소신껏 발언하시는 분들이 있어 대한민국이 돌아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어려운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나를 돌아보고 우리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살펴보는 ‘서로를 배려하는 고민’을 해봤으면 합니다. 우리가 좀 더 넓고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께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관계 속에서 사는 게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부끄러운 그리고 염치없는 관계 그리고 그 관계의 이용을 지양하자는 겁니다.

아직 제 집이 없고, 애가 셋입니다. 우리나라, 잘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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