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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그 모습에 별빛마저 빠져들어

[완도의 자생식물] 111. 잔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8.23 09:59
  • 수정 2019.08.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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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살아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자기가 필요한 것만을 최소한으로 갖춘다. 지금 있는 것만으로 옷을 입는다. 

그런데도 그 자태는 보면 볼수록 풍성함이 엿보인다. 마음의 빛깔을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서는 겉과 속이 일치함에 있다. 

번잡하게 갖다붙일 것 없이 가장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하면 된다. 이것이 미적 자유이다. 봄산에서의 나물들은 그 빛깔만 봐도 연하다. 그중에 잔대는 눈으로 봐도 부드러운데 직접 만져 보면 증명이라도 하듯 연하다. 잔대는 그 유연함에서 오는 자유가 그들의 표현 방식이다. 여름 끝자락에서 피는 잔대는 작은 초롱꽃으로 핀다. 이른 봄에 어린싹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느낌이다. 키가 1미터이고 그 가지는 보일 듯 말 듯 꽃과 연결되어 있다. 

꽃도 콩알만 하다. 잎과 꽃은 생김새와 크기가 다양하다. 잔대가 있으면 잔대 냄새가 난다. 어린 날에 경험으로 잔대를 캐 먹었는데 특별한 도구 없이 나뭇가지를 사용했다. 이들이 사는 곳은 부엽토가 많다. 땅이 부드럽고 깨끗하기에 잔대뿌리도 부드럽다. 나리잔대, 둥근잔대, 넓은잔대 등 여러 종류다. 남도에선 딱지라고 부른다. 약으로 많이 쓰이지는 않는데 실생활에서는 많이 활용했다. 특히 가래와 기침을 멎게 하는 데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 잔대꽃이 많이 있는 데에는 밤하늘에 은하수처럼 보인다. 여름밤에 식구들과 평상에 앉아 옥수수를 먹으면서 낮에 보았던 은하수와 밤에 은하수를 함께 보고싶어진다. 

사실 그 옛날에 독특한 냄새를 지닌 딱지 뿌리만 보았지 꽃을 보이지 않았다. 뿌리와 꽃은 1미터도 안 되는데 꽃을 보기까지 4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이름 없는 꽃들이 내게로 오기까지 많은 일이 지나갔다. 그 사건들이 운명처럼 이어졌다는 것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살아 있는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산에 사는 이들은 자기가 있는 공간만 최대한 활용한다. 딱지꽃이 피는 가지는 가냘프다. 어린싹은 제법 무성한 공간을 활용할 것 같지만 막상 꽃이 피면서 꽃과 가지는 간소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마치 하늘을 다 넣고도 남는다. 아주 작은 딱지꽃은 밤하늘의 별빛이다. 평평한 공간을 넓히는 것보다 다차원적 공간을 만들어가므로 하늘이 들어오고 별이 지나가지 않나 생각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잔대 꽃은 참으로 아름답다. 여기에는 겉과 속이 일치함에서 오는 진실일 것이다.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진정한 자유인이다. 뿌리에서 꽃까지 가는 여정이 그냥 얻어진 게 아니더라. 다들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렇고 현재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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