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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사건과 영구보존의 의미

[완도 시론] 박준영 / 법률사무소 '새봄' 변호사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8.19 13:32
  • 수정 2019.08.2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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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 법률사무소 '새봄' 변호사

김성재 사건에 대해 법원이 방송금지가처분을 받아들였습니다. 기획의도의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 같은데요. 무죄판결을 받은 당사자 측의 입장만을 지나치게 고려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수사 및 재판에 대한 문제지적은 무죄판결을 받은 당사자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이유로 ‘무죄판결을 받은’ 당사자의 인권을 고려한 듯합니다. 
재심으로 다시 다툴 수 있는 유죄 확정판결과 달리 현행법상 다툴 방법이 없는 무죄 확정판결에 대한 비판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의 법적안정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성재 사건에 대한 방송은 단순한 의혹제기가 아닌 새로운 과학적 증거를 통해 당시 수사 및 재판의 잘못을 지적하려 했습니다. 이를 통해 과학적 증거의 올바른 해석과 활용, 무죄 확정판결의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 개선 등을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가처분결정으로 일단 벽에 부딪혔는데요. 법과 제도의 개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건의 의미는 어떻게든 살려야 합니다.

법과 제도의 개선은 사건(경험적 사실)을 통해 주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의미 있는 사건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건의 의미를 살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가처분을 신청한 측은 악플과 개인신상털이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법원이 명예와 인격권 침해로 인정한 것 같은데요. 무죄판결이 확정된 상황에서 이런 피해 주장이 무겁게 받아들여지면, 사건을 통해 의미 있게 주장할 수 있는 법과 제도 개선의 목소리는 묻힐 수밖에 없습니다. 사건의 의미를 살리려면 이런 피해를 최소화하는 우리의 노력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무죄가 확정된 사건 기록은 공소시효 기간 동안 보존하는 게 원칙입니다. 김성재 사건 발생 당시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성재 사건 기록은 여전히 검찰청 청사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국내외적으로 중대하거나 검찰업무에 특히 참고가 될 사건에 관한 사건기록은 준영구로 보존한다’는 예외 규정이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검찰보존사무규칙 제8조 제4항) 

살인 등 중범죄 사건이라 하더라도 준영구로 보존되는 사례는 별로 없습니다. 삼례나라슈퍼 사건도 기록이 없어서 애를 먹었고, 지금 재심이 진행 중인 낙동강변 살인사건도 준영구 보존기록이 아니었습니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로 알려진 오휘웅 사건 기록도 폐기된 상태입니다. 

무죄를 받은 피고인의 명예 등 인격권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이 사건은 기록을 영구 보존한 '공익적인 목적'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합니다. 이 공익적인 목적에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접근한 것이지요. 

그런데 공익적인 목적에 근거한 ‘당시 수사와 재판의 비판’을 누가 하고 있나요.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기록 속 관련자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전문가들을 만나 의견을 들어야 하고 때로는 실험 등을 해야 합니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인력과 비용 등을 쓸 수 있는 곳이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시사프로그램이 그 역할을 하고 있지요. 우리가 분석해서 의미를 찾아야 할 사건들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런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가처분을 받아들인 법원의 결정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결정에 담긴 우려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요. 하지만, 영구 보존된 사건 기록의 공익적인 의미가 있고, 그 의미 부각이 어려운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고려도 필요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건 관련자들의 기억은 흐려집니다. 이 사건과 같이 법의학, 약리학 전문가들이 소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그리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지요. 가처분 결정에 나온 ‘기획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취지의 논리는 방송을 도운 전문가들의 소신에 대한 배려가 없는 판단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제작진이 포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힘을 실어주는 방법 중 하나가 ‘청와대 국민 청원’인 것 같습니다. 저는 부족한 머리 잘 굴려서 방송이 필요한 이유를 계속 찾아 여기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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