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관계

[완도 시론] 박준영 / 법무법인 '새봄' 변호사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8.02 11:46
  • 수정 2019.08.02 11:47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준영 / 법무법인 '새봄' 변호사

제 운명을 바꾼 재심사건 중 삼례나라슈퍼 사건이 있습니다. 한때 진범에 대한 재수사를 진행했던 검사의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재심과 무죄판결이 가능했습니다.

저는 재심을 준비하면서 이 검사를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고, 진범 재수사과정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묻고 싶었습니다. 이 분은 현직에 있었습니다. 여러 경로로 접촉을 시도했지만,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 분을 강원랜드 사건 전문 자문단으로 활동하면서 보게 되었습니다. 이 분의 직권남용혐의를 기소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자리에 제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전문 자문단 참여를 요청받을 때 강원랜드 사건이 대상사건이라는 걸 알았다면, 저는 참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불편한 자리를 원하지 않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드려야 할 분을 여기서 만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 분 입장에서는 자신의 운명이 걸린 일이었습니다. 회의장에서 여러 질문을 던지는 제 바로 옆으로 다가와 서류를 보이며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까지 했습니다.

전문 자문단의 결과가 만장일치 불기소의견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두 명의 검사 중 한명에 대하여는 만장일치였지만, 다른 한명은 기소해야 한다는 반대의견이 하나 있었습니다. 반대의견은 제가 냈습니다. 기소를 해야 한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제가 고맙게 생각하는 그 검사였습니다. 제 소수의견이 옳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직권남용혐의를 묻기에는 법리적으로 어려운 지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수의견을 밝히면서 기소를 함에 있어 유죄판결의 가능성을 따져야 하는 법률가로서 무책임한 의견일 수 있다는 취지로 말을 꺼내면서 제 의견을 밝혔습니다. 7:1이었습니다. 다수의견을 따라가더라도 크게 부담이 되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사건을 통해 검찰권남용을 지적해온 사람으로서 그 자리에서 제가 해야 할 말이 있는 것이고 검찰권남용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밝히는 게 제 역할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사례를 기소하지 않는다는 게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했고,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한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도리 그리고 관계를 생각하자니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제가 이 분을 그 후로 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어느 자리에서 보게 된다면, 저는 고개부터 숙일 것 같습니다. 얼굴을 들지 못할 겁니다. 

일본의 무역 보복 관련 글을 두 개 올렸습니다. 경제문제는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잘 모르면 입 다물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요. 사법시스템을 경험하면서 느낀 문제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제 변론에 빗대어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신흥무관학교 교장 윤기섭 선생님의 후손인 정철승 변호사님은 이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입니다. 페이스북 글이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가 사촌형을 통해 소아마비 장애를 이해하듯이 정 변호사님은 독립운동을 하신 외할아버지를 통해 한일관계를 더 깊이 고민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이에서 늘 챙겨주시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 정철승 형님이 저의 무역보복 관련 글을 어떻게 보실까 걱정도 되고 이럴 때는 정말 난감합니다. 저는 형님이 쓴 글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고 있는데, 형님은 방금 제 동영상에 댓글까지 달아주시며 격려해주셨습니다. 더 미안해집니다. 살아가면서 여러 관계를 맺을 것이고 그 관계 속에서 고민도 커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관계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분명히 합니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데요. 한 말씀만 더 드리고 마무리합니다. 

진상조사단 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일들을 이야기하는 게 참 부담스럽고 고민이 컸습니다. 이 정부에서 일할 기회를 잃는 일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관계에서 조금은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인맥이나 배경 등으로 관계를 갖기 힘든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 편에 서려면 원칙을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봤습니다. 

준비서면을 써야 해서 사무실에 나왔습니다. 약촌오거리 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 재판이 이번 주 수요일에 있기 때문입니다. 진범을 불기소처분한 검사와 고문 경찰까지 피고로 삼았습니다. 이런 관계는 정말 피곤합니다. 

관계를 고려치 않아야 한다는 제 주장이 정의롭게 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래서 다 부질 없는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는 요즘입니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