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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소금이 염전에 흰 소복처럼 누울 때

[에세이] 김지민 /수필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7.16 14:11
  • 수정 2019.07.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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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 / 수필가

죽은 사람을 물가로 질질 끌고 가듯이 
염전의 어둠은 온다 
섬의 그늘들이 바람에 실려온다 
물 안에 스며 있는 물고기들, 
흰 눈이 수면에 번지고 있다 
폐선의 유리창으로 비치는 물속의 어둠 
선실 바닥엔 어린 갈매기들이 웅크렸던 얼룩, 
비늘들을 벗고 있는 물의 저녁이 있다 
멀리 상갓집 밤불에 구름이 쇄골을 비친다 
밀물이 번지는 염전을 보러 오는 눈들은 
저녁에 하얗게 증발한다 
다친 말에 돌을 놓아 
물속에 가라앉히고 온 사람처럼 
여기서 화폭이 퍼지고 저 바람이 그려졌으리라 
희디흰 물소리, 죽은 자들의 언어 같은, 
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을 
그 소리의 영혼이라 부르면 안 되나 
노을이 물을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노을 속으로 물이 건너가는 것이다 
몇천 년을 물속에서 울렁이던 쓴 빛들을 본다 
물의 내장을 본다

 어느 집 텃밭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 이층에서 우아한 그녀가 가방에서 시집 한권을 꺼내며 하는 말.

 이 시집은 지금 나와 만나야 될 때였다고.

 몇 달 전에 손에 들고 마음의 동요없이 다시 놓아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후 그 시집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계속 읽고 또 읽고를, 시집도 독자와 만나는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잠시 건네받아 펼치니 저녁의 염전이 열렸다.

 반복해서 읽다가 해저물녘 흑연이 번져가는 뻘바다를 바라보던 소녀의 눈동자로 들어갔던 날.

 그렇게 난 또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인연으로 시어를 낚는다.

 소금의 빛은 햇살을 쫒으며 무슨 말을 할까?

희디흰 물 소리가 울고 세상이 열렸을 때부터 물 속에서 울렁이던 빛이 땡볕으로 밀려와 해종일 하얀 소금꽃이 핀다.

염전으로 타박타박 걸어오는 어둠위로 노을 빛이 드러눕는 때, 햇빛을 털어내고 그 자리에 그늘이 들어 앉음은 삶의 무게가 잠시 가라앉은 쉼이었을까? 
이울어 가는 사람의 숨이었을까?

양수를 벗어나 세상에 떠 있는 작은 배 한척으로 파도를 타고 이리 저리 흐르는 삶이 어디 잔잔한 물결만 만나겠는가.

삶의 한 켠에서 먼저가는 이가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선 떠나보내는 이가 있는 생의 저물녘이 저녁의 염전에서 읽혀진다. 고단한 생이 증발하고 사리처럼 남게되는 흰 소금, 그삶이 얼마나 고귀하고 이쁘면 소금을 꽃으로 비유할까!

세상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물속에 가라 앉히고 오는 사람처럼 삶도 노을이 물건너 가는 게 아니라 노을이 물속으로 건너갔으면 좋겠다.

빛도 닿지 않는 심연에서 바다의 울음이 응집된 알갱이가 혀끝에서 뛰노는 소리는 짜디짜게 들렸지,  그래도 그 마지막 맛이 달달한 여운을 남겼다는 걸.

너도 나도 안다. 
삶이 그런 것처럼.
너의 영혼이 내 위를 걷고 있다.
그리고 천천히,
검붉은 염전에 흰 소복처럼 드러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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