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결정장애 해결방법

[완도 시론] 배준현 / 고금주조장 대표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7.15 17:33
  • 수정 2019.08.03 16:27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준현 / 고금주조장 대표

 만약~했더라면, 물론 ~했더라면 좋아졌을 수도 있다. 역사는 차갑게 가정을 짓밟는다. 
좋거나 나쁘거나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많은 선택을 했다. 나도 선택한다. 살면서 수많은 선택으로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도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 씩 선택해야 하는 일, 요즘 들어 선택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가뜩이나 소심한 성격에... 하챦은 일에도 머뭇거린다. 할까 말까 이럴까 저럴까 선택하려는 순간, 아주 많이 주저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만 한다. 중요하건 안 중요하건 간에 몸에 베인 결정장애를 보며 벗들은 내게 햄릿형 인간이라 했다. 

 가까운 벗과 내 일을 같이 하며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할까 말까 망설이는 모습이 몹시 답답했나 보다. 왜 그렇게 사냐고 핀잔한다. “자기, 결정장애 아냐? 고민하지 말고 그냥 하라고, 이 답답이야.” 나의 망설임이 그에겐 하챦은 일이었을 것이다. 나대로 머뭇거릴 만한 까닭이 있었는데...그럼에도 내가 결정장애를 지니고 있음을 굳이 부정하진 않는다. 

 가끔 노랫가사에서 도움을 얻기도 한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해라 긴가 민가할 때는 하지 마라 돌아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던 길 가라~’ 

 아주 어려운 선택을 할 때면 생각나는 얘기, 오래된 일, 인터넷신문에 칼럼을 올리던 때가 있었다. 경향이 확실한 글을 썼던 터라 나의 정치 취향을 과감하게 나타냈었다. 

어느 한 편이 돼야지 본모습을 알 수 있고 그것이 세상의 일이려니 꼬집고 비틀고 할퀴던 글이 많았다. 나름대로 진영논리에 빠져 있었다. 내 글에 아프게 반박한 댓글도 많았다. 내 글이 강한 만큼 댓글은 송곳으로 찌르듯 아프게 돌아왔다. 그때 글들을 다시 읽어 본다. 낯 간지럽다. 억지와 편견, 어설픈 선동을 발견한다. 

 하지만 어쩌랴, 그때는 후회없이 글을 썼고 덜 된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용기가 있었다. 출중한 어거지야 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젊은 날이었다. 그시절 시 한편.

편(便)

햇살에 은물결이야/반짝이는 것이 희망이라면/
그걸보며 살아가겠네
돌이켜보면 명쾌하지 않네/
어느 편도 아닌 채 카멜레온이 되버렸어
결국 회색분자이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모두 이 편 저 편으로 가버리고
나는 아직도 돌을 던지지 못한다
(해방 후 찬탁이냐 반탁이냐로 나라안이 두 편으로 갈라졌는데, 갈피를 못잡던 한 사람이 괴로워 했지. 그의 고민은 어느 편도 아닌 거였어. 아무도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지. 어느 편에건 서야 했던 거야. 그는 해결책을 찾았어. 편에 합류하는 방법! 거리로 나가 군중을 향해 무작정 돌을 던졌어. 군중이 쫓아 왔어. “저 놈 잡아라, 우리 편이 아니다.” 쫓기면서 그는 외쳤어.“아, 이제야 살 것 같다” 라고)
이젠 나도 한 편이 되어야지/
이제는 돌을 던져야 해/활자를 향해/TV를 향해
세상살이를 향해/돌을...
그것들에게 쫓기고/그것들의 반대편에 서 있어야 해
희망의 결론이 나를 손짓하여 부르네/
은물결에 빛나는 햇살-
 
 싯구에 끌어다 놓은 괄호안은 한 친구가 소설 속 얘기라며 들려주던 이야기다. 

 한 지식인의 결정장애는 시대를 넘어 아직도 유효하다. 나름대로 결정하는 방법이란게 참 편(便)하다. 되나깨나 살 필요도 있다라고? 그렇게 써버린 시간이 흐른 뒤에 어느 덧 꼰대도 되고 젊은 사람들의 감각을 따라갈 수 없을 때 쯤, 너무 고집스럽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