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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났던 순간을 찾아 뜨겁게 사랑하리

[에세이-고향 생각] 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6.10 07:28
  • 수정 2019.06.10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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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척박한 세상에서 뿌리를 내려 본 사람이라면 알것이다. 고독과 간절함이 무엇인지를......, 그러나 그 시간들은 알에서 깨어나려는 간절한 투쟁이며, 더 큰 세계를 향해 펄럭이는 나비의 날개짓 같은 건지도 모른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헤르만 헷세 <데미안> 중에서-

나는 미국 텍사스에 있는 우리집 뒤란에 그리운 풍경들을 하나 씩 옮겨 심고있다. 내 어릴 적에 엄니가 정성껏 키우던 한국가지는 떡잎이 나온지 달포도 지났는데, 아직도 말라가는 떡잎을 바르르 떨며 간절한 뿌리내림을 지속하고 있다. 지인에게 물어보니 한국가지를 이곳에서 키우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도라지와 부추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봄에 파종하고 한달 넘게 부지런히 물을 주며 기다릴 때에 포로시 올라온 연한 순들은 어찌나 약골이던지 물을 줄 때마다 땅바닥에 드러누워 애처롭기가 그지 없었다.

그러던 녀석들이 올 봄에는 제법 튼실하게 싹을 올렸고 부추김치, 겉절이, 그리고 수시로 부추전까지 식탁에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복숭아 나무에서는 탐스럽게 복숭아가 익어가고 단감나무와  대추나무, 그리고 비파나무까지 서로 키재기를 하듯 앞 다투어 자라고 있다. 밭에는 갖가지 채소들을 골고루 심었는데 모두 조금씩 심었기에 힘들이지 않고 그들을 지켜보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어린모종들을 밭에 옮겨 심으면 마치 심한 몸살에라도 걸린 듯 그들은 끙끙 앓기를 시작한다. 부모님을 잃고 홀로서기를 시작하던 시절, 애처로운 가지줄기처럼 나 역시 홀로 떨며 견뎌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겨우 등록금은 마련하였지만 대학교재도 구입하지 못한 채 늘 제한된 시간 속에서 쫒기면서도 나는 해맑은 오이꽃이나 고추꽃처럼 나만의 결실을 꿈꾸고 있었다.

그때 데미안 속의 문장들은 마치 신비로운 환상처럼 나에게 다가왔고,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늘 나의 감성과 지성을 자극하고 있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위해 투쟁한다"  엄마의 자궁에서 방금 빠져나온 아기는 작은 주먹을 꼬옥 쥐고 팔과 다리를 연신 허우적대며 울음을 터뜨린다. 새로 내딛으려는 낯선 세상은 이처럼 우리들을 걱정스럽게도 불안하게도 만들었다.

알은 세계이고, 고정관념이고, 오늘 나의 실존인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알을 깨뜨린다는 것은 파괴가 아닌 생성이며 안주하려는 마음의 틀을 부수고 어떤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같은 자유를 획득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더 창조의 본연의 세계 속으로 초대하려고 한다.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리는 시간들은 어느 때 라도 힘들고 고독했지만 환희로웠다. 내가 당신이라는 세상에 한 송이 꽃을 심는 시간들도 그랬고, 지금 중년의 나이에 그림이라는 신비로운 세계에 뿌리를 내려가는 이 일도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 다 나의 간절한 기도가 삶의 빛으로 하나 씩 내 안에 다가오는 것이니 말이다.

지금, 당신은 청춘이기를 원하는가? 내가 좋아하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의 한 구절을 이곳에 옮겨보고 싶다.
Years may wrinkle the skin, but to give up enthusiasm wrinkles the soul.(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만들지만, 열정을 포기하면 영혼을 찌그러들게 만든다.)
 

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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