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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가 입을 열어도 될텐데..."

[독자 기고] 이승창 / 자유기고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6.09 16:54
  • 수정 2019.06.0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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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창 / 자유기고가

그를 처음 알게 된 때는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1990년대 초반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가 1980년 광주에서 있었던 비극의 현장에 직접 진압에 참여했던 현역 군인의 신분이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1980년 5월 당시 현역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었던 나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당시에는 언론을 쉽게 접할 수가 없어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고, 전역 후에도 취직과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시기였으므로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그가 당시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궁금한 점이 많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광주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으면서도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어느덧 39년이 지나면서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은 시간이 덧없이 흐르면서 실상이 묻혀 미궁에 빠질 우려가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당시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에 있었거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사람들에 의해 하나 둘씩 밝혀지고 있다.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두 사람의 증언이었다. 전직 미 육군 501정보여단 출신으로 피지로 이민하여 살고있는 김용장씨는 ‘당시 보안사령관으로 계엄정국 하의 실세였던 전두환씨가 광주를 방문한 후 민간인 사살이 시작됐다’고 증언했고, 당시 505 보안부대 수사관이었던 허장환씨는 39년 지나도 흔적이 남아있는 시신 소각 현장을 직접 찾아 ‘5·18 당시 사망한 시민들의 시신을 계엄군이 소각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증언했다.

이들은 왜 지금 이 시점에 오랫동안 마음 속에 담고 있던 사실에 대해 증언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그들은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증언한 배경에 대해 ‘지금 이 시점에서 증언하지 못하면 영원히 진실은 묻히고 만다는 생각에 증언하게 됐다’고 밝혔고, ‘잊혀져야 될 일이 아니고 잊혀져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말했다. 5·18 당시에도 이미 서로를 알고 지냈던 두 사람은 최근에 재회하여 서로에게 증언을 하자고 용기를 북돋았고 함께 역사적인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허씨와 김씨는 13~14일 서울과 광주에서의 증언에서 ‘5·18은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철저하게 기획됐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주장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마음 속에 응어리져 있던 진실들이 그들의 용기있는 증언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그동안 베일에 감춰져있던 진실을 알게 됐다.

매스컴을 통해 밝혀지고 있는 충격적인 두 사람의 증언을 보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문득 그가 떠올랐다. 그는 이들의 증언을 보면서 과연 어떤 느낌을 받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가 궁금하다. 요즘 들어서는 서로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그가 현재 시점에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지만, 다시 만나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말고 오랫동안 가슴에 담고있는 진실들을 밝혀 마음의 짐을 훌훌 털어내고 속 편하게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고 권유하고 싶다.

5·18민주화운동이 우리에게 각별한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 되었고, 군부독재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 1987년 6월 항쟁의 밑거름이 됐다. 5·18민주화운동으로부터 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광주를 비롯한 우리 국민들이 보인 독재에 대한 저항과 참여·연대의식은 오늘날 세계 곳곳에 중요한 민주화운동 사례로 알려지고 있어 201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됐다.

역사는 진실을 바탕으로 과거의 잘못을 통렬히 반성하고 깨달은 후에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부끄러운 과거를 묻어버리거나 잊고서는 우리는 결코 한 발자국도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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