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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의 차 한잔!

[완도차밭, 은선동의 茶 文化 산책 - 65]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6.09 16:49
  • 수정 2019.06.0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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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매년 스승의 날이면 정성스레 만든 그 해 햇차를 스승님을 향해 한 잔 씩 올리곤 하였다. 내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헌공의례 중 하나이다. 보통 5월 10일경이면 늦어도 찻일이 모두 끝나서 스승의 날을 맞이하면 먼저 햇 차를 보내 드리거나, 멀리 찾아뵙지 못하는 스승님을 그리워하며 차를 올리곤 하였던 것이다. 필자에게 스승님이란 존재는 매우 절대적이고 존경을 넘어 신앙적 신심을 바치는 존재이다.

스승이란 스스로 그 스승의 자리에 앉거나 스스로 스승으로 불리우는 존재가 아니다. 스승은 온통 혈성을 바치는 제자가 받들어 모시는 존재이다. 그렇게 받들어 모실만한 스승님이 필자에겐 다행히 계셨었다. 이는 단순히 다행이 아니라 천운이며 숙세의 깊은 인연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인연인 것이다. 이러한 까닭을 알고 나면 사제의 깊은 인연의 법정을 감히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종종 스스로 스승의 자리에 오르거나 함부로 스승으로 불리우길 원하는 이들을 본다. 특히 종교가와 특정 조직이나 단체에 많은 경우를 본다. 해프닝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제자라 칭하고 함부로 하는 이들을 볼 때면 더욱더 실소를 금할 길이 없을 때도 허다하다. 그렇다. 스승은 참으로 거룩한 분이다. 오직 그 삶에 어둡고 어리석은 이와 혹은, 혼탁한 세상을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시고 그 뜻과 마음에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요즘에 그런 분이 어디계시냐고 반문하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 어느 곳이든지 그런 분은 꼭 계시기 마련이다.

스스로 그러한 서원을 세우고 귀하고 소중한 인연 가꿈에 정성을 들이며 복과 지혜있는 이가 알아보고 모시는 것이다. 또한 조금도 드러내지 않고 세상 속에 깊이 숨어 계시면서 세상을 향한 진리적 삶을 묵묵히 실천하시는 분! 과연 내 주변에는 어떤 분이 그러시는가 살펴보고 또 살펴볼 일이다. 그래서일까! 자기 삶에 많은 스승님을 모시고 사는 이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며, 복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는 과연 몇 분의 스승님을 어떻게 모시고 살고 있는가 하고 깊이 반조해 볼 일이다.

 ‘선악이 개오사’라 하였고, ‘삼인행에 필유아사언’이라 하였다. 세상사 착하고 악한 모든 일이 모두 나의 스승이다. 또 세 사람이 길을 가다보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는 뜻이다. 즉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진리적 까닭 아님이 없다는 것이며, 세 사람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존재가 다 신성 아님이 없으니 하물며 사람이랴하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한 생각 바꾸면 세상이 온통 진리적 화현이요, 세상의 모든 이들이 스승 아닌 존재가 없으며, 삶의 매순간마다 존중과 공경의 예를 놓치지 않음을 가르친 논어의 사표에 대한 구절 중 하나이다. 특히 찻자리는 남녀노소 유무식과 계층의 구분이 일체 없다. 함께하는 그 순간 서로 정신문화적 교감과 소통으로 가장 자연스럽고 편한 방식을 빌린, 지극한 예와 절도를 완성시키는 또 다른 공부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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