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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득량만 팔아 먹은 '서칠룡'

[금당 특집] 1. 금당의 봉이 김선달, 서칠룡 이야기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19.05.19 15:56
  • 수정 2019.05.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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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50여년 전.
금당면 육동마을에는 젋은 처자들이 보기만하면 한 눈에 반하고, 입을 여는 순간엔 유창한 말로 그날부터 상사병에 빠지게 한다는 남자가 있었다. 
그 이름 서칠룡.
조선시대 금당면은 장흥군 소속으로 그는 영수원 직에 수년 간 재직하였다.
그가 젋은시절, 한해(가뭄)가 몇 년동안 이어지자 생활이 피폐해진 이들을 구명하기 위해 그만 국가의 세금을 써버리고 말았다. 세금을 횡령했을 땐 일가친척이 공동 책임을 졌기 때문에, 이 소식을 들은 이천서씨 집성촌인 육동마을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마을 어른들은 이제 어떡할려냐고 연신 다그치자, 칠룡은 "그러면 내가 한양에 가서 이 일을 해결하고 오겠노라"며 서울로 나섰다. 산 넘고 물 건너 드디어 한양에 도착한 칠룡.
일단 비단전에 들러 가장 값비싼 비단옷을 빼입고 궁궐에서 가까운 고급 객관으로 찾아들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풍채 좋은 양반네 차림. 객관에 머물던 칠룡은 날마다 큰길가로 나가 근방의 어린 아이들에게 엽전을 나누어 주었다. 여럿날 객관에 머물면서 호기로운 성품에다 후한 씀씀이로 주인과도 잘 아는 사이가 되었고 조정에 세금을 바치러 온 관리인 것을 알자, 주인은 더욱 융숭하게 대접했다.
국세 납부 기한이 하루하루 다가와 드디어 내일이 납세 마감날.
그날도 여느 날처럼 아이들과 놀다가 객관으로 돌아왔는데, 그때부터 갑자기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워 끙끙 앓는 칠룡.
이를 본 하인이 급히 주인에게 알렸고, 이 소식을 들은 주인은 깜짝 놀랐다. 혹여나 객관의 최상급 손님이 병이라도 얻게되면 객관의 명성은 그날부로 추락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해, 안절부절 못하다 칠룡의 방으로 뛰어가 "관리 양반네님, 어째 물이 안 맞으셨소? 음식이 잘못 되었소?"
주인의 말에 칠룡은 한참을 뜸 들이다가 “여기서 천리 밖 금당에서 세금을 짊어지고 올 짐꾼이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는데 납세 기일이 내일로 다가왔소"
"만약, 기일 내에 세금을 내지 못하면 나는 물론이고 금당면 또한 큰일이요.” 그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은 “그랬군요. 그런 일이라면 우선 저의 돈으로 세금을 내시고 나중에 돈짐이 오면 그때 갚아주시도록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오, 좋은 생각이시요!"
다음 날 칠룡은 주인네 하인과 엽전을 짊어지고 무사히 세금을 납부하게 되었다. 이제는 남은 것은 주인네 돈을 갚는 일.
다음 날부터 칠룡은 남대문에 나가 주인과 함께 돈짐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여러 날이 지났지만 돈짐이 올리 만무. 
"햐! 이거, 변고가 생긴거야! 변고가!"
칠룡은 크게 탄식하면서 주인에게 “먼 길에 돈짐을 지고 오던 짐꾼이 필연코 중도에서 사고를 당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 있는 것 같으니, 주인께선 나와 함께 당장에 금당으로 내려갑시다"
그렇게해 칠룡은 주인과 함께 천리길을 내려오게 되는데, 여럿날을 걷다가 드디어 전라도 보성 ‘봇재’에 이르러 득량만을 바라보고선 갑자기 주저앉아 대성통곡. 
"오매, 오매! 이 무슨 변고여! 변고!"
칠룡의 대성통곡에 주인은 급히 "무엇 때문에 그리 대성통곡이시요?"
“주인 양반! 이 봇재에서 금당도가 멀기는 하나 저기 훤히 바라다보이는 곳이 득량만인데 우리 할아버지께서 이 득량만 갯벌을 막아 수만 두락의 옥답을 만들어 매년 수만 석의 소작료를 받아들였소" "그런데 그 많은 논배미가 모두 바닷물에 잠겨버렸으니 이건 필시 제방이 터진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이제, 이 일을 어찌 해야 한단 말이오?”
칠룡이 땅을 치며 통곡을 하니 주인은 처지가 딱했는지 할 말을 잃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다는 항상 바닷물이 가득 차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실지 밀물과 썰물이 들고 나는 남해안의 바닷가는 처음 본 서울 사람인지라, 광활한 농장을 잃은 칠룡의 처지가 십분 이해되며 오히려 딱해졌다.  여관 주인은 하는 수 없이 그 길로 되돌아갔고, 이듬해 다시 내려왔지만 보성 봇재에 이르러 득량만을 바라보고선 여전히 물반 갯벌반이여서 긴 한숨을 내뿜으며 체념하고 되돌아가야만 했다.
이후 고향에 돌아온 칠룡은 열심히 일해서 객관 주인의 돈을 모두 갚았지만 주인의 너그러운 마음까지는 다 갚지 못해늘 한양을 향해 고개를 숙였고, 그가 죽은 후 묘지 옆에는 허리 굽은 소나무가 자라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참고문헌=완도군지(2010) / 사진= 득량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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