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고흥도 유람선 띄워 탐낸 완도 하롱베이 ‘금당 8경’

조선 후기 위세직의 ‘금당별곡’에 처음 등장한 ‘금당 8경’…지금과 달리 서정적 아름다움 담아내

  •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 입력 2019.05.10 15:27
  • 수정 2019.05.10 15:47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당의 바다는 마치 거문고 줄을 늘어놓은 것 같다.

완도 금당 울포항(금일쪽)이나 가학항(장흥 회진쪽)에서 배에 올라 금당도를 일주하면 금강산 천불전을 닮은 천불전, 코끼리바위, 남근바위, 초가바위, 상여바위, 스님바위, 부채바위, 병풍바위 등 ‘금당 8경’의 신비스러운 자태에 탄성이 끊이질 않는다.

이 얼마나 멋진 풍경이었으면 2015년경부터 고흥군이 자신의 소속 섬도 아닌데 ‘금당 8경’을 유람하는 ‘나라호’라는 용머리가 있는 유람선을 띄우기까지 했을까.
 

완도 금당면과 인접해 있는 고흥군에서 자신의 소속 섬도 아닌데 '금당 8경'을 유람하는 '나라호'라는 유람선을 띄웠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금당 8경’은 본래의 ‘금당 8경’이 아니다. 워낙에 기암괴석이 비경(秘經)이라 주로 그 바위와 어우러진 풍광을 우리는 ‘금당 8경’으로 알고 있으나 본래의 ‘금당 8경’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인으로 송시열과 민정중의 가르침을 받은 위세직이 지은 <금당별곡(金塘別曲)>에 나온다.

한때는 ‘금당별곡’을 존재 위백규가 지었다고 알려졌으나 1967년에 발행한 국어국문학 제34~35 합병호에서 위세직의 작품임을 밝힌 논문이 발표됨에 따라 지은이가 정정됐지만 여전히 존재 위백규의 작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금당 8경이 처음 등장한 조선 후기 학자 위세직의 '금당별곡'


‘금당별곡’의 내용은 배로 금당도와 만화도를 유람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감정을 서경적으로 읊은 일종의 기행가사이다. 문학평론가들은 이 작품의 영향 관계를 따지면서 정철의 ‘관동별곡’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창작되어진 것으로 보았고, 따라서 기봉의 ‘관서별곡’은 정철의 ‘관동별곡’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관동별곡’은 ‘금당별곡’에 영향을 준 것이기 때문에, 결국 ‘금당별곡’은 ‘관서별곡’의 간접적 영향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기봉과 송강의 가사가 북방의 승경을 노래한 기행가사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남방의 해양 도서 지방의 승경을 노래한 가사라는 점이 특이하다.

이 ‘금당별곡’ 내에 ‘금당 8경’이 나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경은 공산제월(孔山霽月)로 맑게 갠 하늘에 뜬 밝은 달을 가리킨다. 
“둥근 보름달이 공산 위에 걸쳐 사방을 가득 실은 달빛 아래 유림들의 도를 닦은 공부자의 담화를 이루었던 것이 공산제월이 아니냐.”

2경은 사동효종, 성산효종(寺洞曉鐘, 聖山曉鐘)으로 이른 새벽에 들려오는 절의 소리다.
명산인 일명 ‘복개산’ 기슭에 자리 잡은 절골에서 불경을 시도하는 새벽 종소리가 적막을 깨뜨리며 맑은 정신을 깃들게 한 것에 대한 감탄이다.

3경은 기봉세우(箕峯細雨)로 비에 젖어 삿갓 모양의 봉우리 같은 아름다운 나무군락 이름이다.
세포리 목섬 금당적벽의 깎아지른 기암 사이에 갖가지 형태의 아름다운 나무들 군락이 수평선에 내린 세우와 안개 위에 떠 있는 모습은 흡사 비에 삿갓 모양의 봉우리처럼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4경은 울포귀범(鬱浦歸帆)으로 율포로 들어오는 만성의 돛단배의 모습이다.
양편 기슭으로 울창한 노송도 아름다운데 한갓 비견도가 앞에 가로놓여 작은 호수를 이루고 돌아오는 황포돛배가 떠 있는 모습은 물수반 위에 놓은 꽃봉오리처럼 아름답기도 하다.

5경은 적벽청풍, 교암청풍(赤壁淸風, 轎岩淸風)으로 가마바위로 불어오는 청아한 바람이다.
세포리 포안 입구엔 가마바위가 위치하고 있어 맑고 시원한 바람이 끊이지 않고 오고 간 배 손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고 그 옆으로 늘어선 기암절벽은 해상 절경을 자랑한다.

6경은 화도모운(花島暮雲)으로 한 덩이 구름처럼 떠가는 진달래 꽃동산 같은 작은 섬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분홍꽃 진달래가 한창이면 작은 섬이 온통 꽃동산처럼 아름다운데 잔잔한 수면의 은색 비단 위에 덩실덩실 떠 있는 모습은 둥실 떠가는 한 덩이 구름과 같은 곳으로 표현된다.

7경은 학령낙조(鶴嶺落照)로 황금빛 저녁놀이 비단처럼 깔린 해상의 곱디 고운 자태다.
고요히 저물어간 해상은 잔잔한데 해는 재 넘어 바닷속에 잠겨 가고 황금빛 저녁노을이 비단처럼 깔려 있음에 감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쏘냐.

8경은 각암목적(角岩牧笛)으로 뿔바위 위로 들려오는 초동의 피리소리다.
봉동리 뒷산 뿔바위에 나무 하고 소 먹이는 초목동들이 올라앉아 버들줄기를 꺾어 만든 통피리 자유곡은 봄소식을 알려오고 농촌의 한가로운 한 장의 정경을 보여준다.

이 팔경(八景)이란 것은 중국의 ‘소상팔경도’에서 유래하였는데, 중국 호남성 소수와 상강이 만나는 동정호 남쪽 주변의 절경을 8폭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 바로 ‘소상팔경도’다. 조선시대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회화의 한 장르로, 산수의 경개가 뛰어난 것을 일컫는 ‘팔경(八景)’이란 말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하고 있다. 
 

안견 전칭, 《소상팔경도》, 비단에 수묵, 각 / 월간 민화 자료

소상팔경도는 북송 때의 송적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1078년 그 형식이 확정된 것으로 전해져 왔다. 그러나 그보다 한세기 앞선 오호십육국시대 때 이영구(919~967)가 처음 그렸다는 사실이 2006년 8월 건국대 국문학과 전경원 박사에 의해 새롭게 밝혀졌다. 장학성의 <호남통지>에 실린 문인화가 미불의 ‘소상팔경도시병서’라는 글에 그런 사실이 들어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고려 명종 때 어명으로 이광필이 소상팔경도를 그렸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나온다. 이로 미루어 보아 12세기 중엽에 이미 도입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후 ‘소상팔경도’는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문인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들은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을 시문이나 산수화로 남겼고, 여러 지리지에도 지역별 명승들을 선별하여 주요 항목으로 기록했다. 위세직의 ‘금당별곡’에 나온 ‘금당 8경’도 바로 이러한 영향으로 남겨진 기록으로 보인다.

현재 소개되고 있는 '금당 8경', 그러나 '금당 8경'이 처음 등장한 위세직의 '금당별곡'에는 기암괴석 중심의 8경이 아니라 서정적 아름다움을 담은 8경을 서술하고 있다.

현재의 ‘금당 8경’은 다음과 같다.(순서는 편의상 붙임)

1경은 병풍바위로 금당면 육동리에 있는 해안절벽으로 화산암의 주상절리이다. 큰 병풍바위와 작은 병풍바위가 이웃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2경은 병풍바위 근처 해안절벽으로 단면의 형태가 육각형을 이루는 화산암 주상절리이다. 부채살을 활짝 펼쳐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부채바위라 부른다.

3경은 스님바위로 금당면 울포리에 있는 바위로 둥글고 반질반질하여 마치 스님 머리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4경은 교암청풍으로 금당면 세포리에 있는 해안절벽으로 끊이지 않는 시원한 바람과 시루떡처럼 늘어선 해상절경을 자랑한다.

5경은 연산호 군락지로 금당도에 딸린 무인도인 소화도(小花島) 주변 해역에서 대규모 연산호군락지가 발견되어 2012년 11월 30일 국토교통부에서 연산호군락의 수중경관 및 학술적 가치를 체계적으로 보전·관리하기 위하여 소화도 주변 해역 0.81km²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다.

6경은 초가바위로 금당도에 딸린 무인도인 중화도(中花島)에 있는 낮은 해안절벽이다. 둥근 초가지붕을 얹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초가바위 또는 집바위라고 부른다.

7경은 코끼리바위로 금당도에 딸린 무인도인 대화도(大花島)에 있는 해안절벽으로 절벽의 기암이 코끼리가 코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8경은 남근바위로 금당도에 딸린 무인도인 대화도(大花島)에 있는 코끼리바위 바로 옆에 위치하며 남근 형상을 한 바위가 높이 솟아있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