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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가 그러워 떨어져서도 지지 않습니까

[청산도슬로걷기축제 특집] 1. 청산도 동백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19.05.07 07:45
  • 수정 2019.05.07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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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아는 노래라곤 그거 하나뿐인 것 같았다.
가끔씩, 저녁 시간이면 방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노랫소리.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이 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건가요? 비 내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아! 노랫가락이 슬픈 건 둘째치고서라도 그녀의 노래를 듣는다는 건, 정말이지 미쳐 버릴 것만 같다.  지금 이 순간, 차라리 귀머거리가 되어 버렸으면 좋겠다.
두 손으로 귀를 틀어 막아보지만, 그녀의 구슬픈 노랫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왁자지껄, 노랫소리에 맞춰 손바닥 장단과 젓가락 장단이 이어지고 있다.
손님들은 대부분이 뱃사람들이었는데, 세상에 그녀가 노래를 하는 게 가장 싫었다.  ‘비내리는 호남선’
왜, 싫었을까? 왜, 그렇게!
지금 그녀는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흡사 노래를 팔고 있는 건 아닐까!
근데, 대가리에 핏기도 가시지 않았던 어린 놈이 어찌 음식을 파는 것과 노래를 파는 게 다르다는 건 알았을까?
아니, 근데 술집도 아니고 음식점에서 흥에 겨운 손님들이 시키면 주인이라면 의당 한자리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
물론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그 어린 놈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그 일이 무지무지 싫었다.
더군다나 레파토리라도 한결같아!
허구헌날 ‘목이~ 메인 이별가야~’
노래라도 좀 바꾸지.
또 술 한 잔에도 금방 동백꽃잎처럼 붉게 물들어 버리는 그녀의 얼굴.
손님이 건네주는 술을 한 잔을 들이킬 땐 더욱 미웠다. 어린 놈은 그녀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세상에 대한 원망이 참 많이 일어났다.
그녀는 술을 마신 날엔 꼭, 동백꽃을 따 꽁무니의 단물을 빨아 먹곤 했다.
그 어린 놈이 고교생이 되던 날, 이 지긋지긋한 고향에선 도저히 살 수 없다며 그날 밤, 동백나무를 싹뚝 베어 버리고 새벽배로 고향을 떠났다.
'다시는,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녀가 죽어간다는 말이 들려올 때도 내려가지 않았다.
그녀가 떠나던 날, 전해오는 누나의 말 "네가 태어났을 때 얼마나 이뻤는 줄 아냐?" "엄마에겐 세상에서 가장 이쁜  꽃이 동백꽃이었데!"
"그래서 네가 태어난 해에 집 앞에 동백나무를 심었어!"
"나도 그랬지! 엄마? 손님들 앞에서 노래 좀 안 부르면 안돼?"
“그랬너니, 엄마가 하는 말!"
"아야~ 느그들을 먹여 살리는데, 노래 한자락에 술 한 잔이 무에 그리 대수냐? 엉...” “느그덜 위한 거라면 더 한 것도 해야. 더 한 것도!”
"너, 그리 가고 나서 엄마는 다시 그 자리에 동백나무를 심었어"
나를 위한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삶. 사랑이다.
 

당신은
그 뉘가 그리워
그토록 애태워 피었다가
가장 고귀한 이름으로
떨어져서
그리도 지지를 않습니까?

30년동안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엄마의 아들은#오는 4월 13일, 고향 청산도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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