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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먼저 피는 앙증스러운 봄

[완도의 자생식물] 89. 꽃다지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03.22 09:21
  • 수정 2019.03.2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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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지 풀씨 같은 시간이 모여 사는 맑은 고향이 있다. 난생처음 본 꽃다지 풀꽃 같은 가난한 마음으로 사는 고향이 있다. 바삐 새벽길 떠난 찬바람 속에서도 연분홍 같은 사랑이 있으니 그곳이 나의 고향이다.

냉이꽃, 꽃다지꽃 잇는 고향으로 가자. 아침나절에 꽃이 핀다. 저녁나절 꽃이 지는 마음이 깊어진다. 이곳이 또한 나의 고향이라. 참꽃마리와 냉이꽃 그 사이에서 꽃다지꽃이 무리를 지어 낮게 핀다. 꽃다지꽃은 아주 작은 키의 꽃으로 피는데 3~4월 중순쯤에는 냉이꽃보다 작지만 꽃대가 바람에 몸을 실을 정도로 올라와 있다. 봄의 마음을 가장 알기 쉬운 곳에서 봄 길을 가는 나그네의 길 따라 피는 꽃. 큰 마당에서 코흘리개 친구들과 둘러앉아 소꿉놀이하였다.

사금파리 그릇에 노란 작은 꽃를 따 담아 넓적한 돌에 밥상처럼 차려 올렸던 것이 아마 냉이꽃과 꽃다지꽃으로 생각 된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풀씨 같은 시간이 조금은 외롭고 쓸쓸하지만 이것들이 오히려 조급한 시간을 덜고 고요한 나만의 시간이다.

꽃다지는 작년 가을에 작은 잎을 두었다가 봄이 오면 작은 깨알처럼 피게 되는 두해살이 풀꽃이다. 추운 겨울에는 하얀 솜털로 온몸을 똬리 모양으로 움츠려 있다가 이른 봄에 키 작은 꽃을 달아 두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꽃대가 올라오면서 하얀 솜털도 말끔히 없어진다. 솜털이 없어진 잎에서는 가냘픈 아기의 손가락처럼 정겹다. 봄을 앙증스럽게 지상에서 먼저 핀다. 꽃-다지는 봄에 이르러 제일 먼저 꽃을 피운다는 것으로 순우리말이다.

꽃다지는 나물과 약효로도 쓰이는데 설사를 나게 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변비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소통이 원활하게 되니 부기가 잘빠지고 기침과 가래를 삭여도 주고 이뇨작용도 한다고 한다. 이른 봄에 아기 손바닥만큼 되는 꽃다지를 산문집의 책갈피에 넣어 두었는데 그 책장에 쓰여진 말들이 운율을 달고 있어 시화전이 되고 말았다. 하루하루가 이어지게 하고 계절이 이어지게 하고 마음마음들이 이어지게 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이어가게 한다.

이럴 때 봄은 나의 봄이 되고 만다. 봄 길은 아주 작은 풀꽃들이 계속 피어있다. 눈높이를 낮추어 이들과 마주 대할 땐 음표를 보고 있는 듯하다. 소리를 내지 않아도 노래가 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얘기가 하고 있다. 꽃다지 꽃을 알고 나서 좀 더 말을 적게 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아침나절에 지나온 봄길에서 아직도 그 길을 가고 있는 데에는 그곳에 작은 들꽃들이 피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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