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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다 가두어 둘 수 없는 박주가리 홀씨, 이 생명들

[완도의 자생식물] 83. 박주가리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03.09 13:55
  • 수정 2019.03.0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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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가리 풀꽃 아이들이 푸른 하늘 여울목에서 속삭인다. 별 따라 물 따라 그들이 떠난 그 자리에선 슬픈 사연도 따뜻한 추억으로 담았다. 초록의 신발을 신고 봄여름 가을을 걸어온 삶도 마른 박에서는 경건한 마음만 담아놓았다. 박주가리 씨앗들이 떠나버린 그곳에선 시린 달빛이 와서 따뜻한 시를 쓰고 있다. 여름에 연보라 작은 꿈을 꾸었다가 그 꿈이 실현되는 날이 아주 작은 박이 벌어지는 날이다.

그때 하늘이 내려오고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날에 그대들의 눈물 꽃이 다시 피어나는 찬란한 생명이다. 억척스럽게 자라서 흔들리는 비바람에도 꽃이 되고 다시 하늘로 줄기차게 올라서서 긴 기다림의 공간이 터지면 명랑한 홀씨가 되어 하늘로 날아감이다. 개울물 쉼 없이 흘러 강으로 가고 가난한 빈집은 어디론가 떠나버린 인정을 기억해 내는 일은 박주가리 옆에 빨간 찔레꽃 열매가 있기 때문이다.

봄부터 연한 박주가리 줄기 옆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찔레꽃 향기는 여름을 넘고 가을을 보내는 마음을 만들었다. 박주가리 초록의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날들을 기억해 내는 일은 하늘의 여울목을 만드는 박주가리 홀씨에게 듣는 사연들이다. 어디에다 가두어 둘 수 없는 이 생명들, 눈물들은 오직 한 길이 있다면 만남과 떠남만이 있는 것이다.

박주가리는 다년생 덩굴풀이다. 남도에서 산과 밭에 잘 자라며 둥글고 큰 잎사귀로 봄부터 가을까지 볼 수 있고 박주가리 열매는 겨울에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잎줄기를 따면 하얀 유즙이 많이 나오는데 이 성분은 독성이 있으므로 바로 먹는 것은 해롭다. 또한 흰 유즙은 벌레들이 잎사귀를 못 먹게 하는 차원도 있고 뱀이나 독충에 물렸을 때 발라주면 효과가 있다. 씨앗은 '나마자'라 하여 정기를 보하고 조루를 치료하며 새살을 돋게 하는 데도 효과가 좋다.

씨앗을 달고 늘어진 명주실 같은 털은 모아서 도장밥을 만들어 쓰거나 가늘게 꼬아서 실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고 한다. 초록의 신발을 신고 지금까지 걸어온 삶들은 이제는 마른 나뭇가지에서 경건하게 명상에 젖어 있다. 그리고 박주가리는 씨앗들이 다 떠난 그 자리에 시린 달빛이 와서 따뜻한 시를 쓰고 있다. 밤새 깨끗한 별들이 내려와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박주가리에 남겨 두면 지난 풀꽃 아이들이 놀러 와 그 이야기를 읽는다. 생명은 바람보다 더 출렁이고 하늘보다 더 깊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생명 앞에서 좀 더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어느 곳에 내려앉던지 따뜻한 눈물이 있어 새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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