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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하루의 새벽

[완도 시론] 정택진 / 소설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3.09 13:11
  • 수정 2019.03.0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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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진 / 소설가

함마이가 일어나라고 흔들어도 우리는 한참을 이불속에서 꿈질거렸다. 어찌어찌 이불에서 나와서도 우리는 방구석에 쪼그린 채 한참을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노무자식들, 언능 옷 안 입냐!” 하는 아버지의 호통에, 벌떡 일어나 고양이세수를 하고는 설빔을 입는 것이었다. 큰집, 새집, 아릿집에 들러 세배를 하고, 거기 모인 성제간들과 동네를 나선다. 길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고, 뒤뚱을 불어온 바람이 볼따구를 찌르고 달아난다.

“아따, 따땃한 낮에 가믄 쓰것구만, 왜 꼭 이 새복에 가끄나이.”

어른들의 이만큼쯤에 꼬랑지를 이루며 꼬맹이들은 작은 소리로 불퉁거린다.

들길 여기저기를 흰 두루마기가 걸어가고, 어른들과 아이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어른들은 들길에서 서로 만나면, “형님, 설 잘 쇠셨습니까?”, “이이, 동생도 설 잘 쇠셨는가? 새해에도 건강하시게.” 하며 인사를 나눈다. 우리들의 관심은 인사보다는 쪽수인 것이어서, 동네에서 가장 많은 성제간을 가진 우리는 어느 성제간을 만나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진다.

성묘는 까끔뚱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른들은 뫼뚱 앞에 나이순으로 나란히 서고, 형들이 그 옆을 이으며, 한동갑일지라도 우리들도 생일 순서에 맞춰 꼬리를 만든다. 맨 앞의 어른이 몸을 굽히면 모두들 엄숙하게 절을 하는 것이지만, 우리들은 엎드린 채 서로 엉덩이를 밀치며 일어서는 것도 잊고 킥킥대고 있다. 절을 하고 나면 어른들은 이 뫼뚱은 몇 대 조부님이고, 이것은 몇 대 함마이고, 그리고 이것은 그 조부님의 아들이고 하면서 설명을 하지만 우리들은 그런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날도 추운데 어서 한바퀴 돌고 갔으면 싶다.

다음은 작은덜로 올라갔다가, 길을 타고 내려와 고래지미로 넘어가 큰끝에까지 갔다가는, 다시 돌아와 높은나리를 거쳐 맹두산 꼭대기에 오른다. 어느새 동녘은 환하게 밝아 있고 우리들의 성묘도 끝이다. 이제 성제간들은 새집으로 내려가 떡국 한 그릇씩을 먹고집으로 흩어질 것이다. 우리들의 정월초하루의 아침이다.

서른 명의 대부대가 오십 년이 못된 사이에 다섯 명으로 줄었다. 세상 탓인지, 세상을 사는 사람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쓸쓸한 초하루의 새벽인 것만은 분명하다. 관습이나 절차라는 것도 다 사람들이 생성한 것일지니, 초하루의 이 풍광도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리라. 지금의 것이 쓸쓸하다고 옛날의 것으로 돌이킬 수도 없고, 지금이 너무 허랑하다고 옛날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리라. 아무리 그것이 아름다웠을지라도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그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유지되기가 힘들게 되리라. 현대인들은 현실을 사는 데 얼마나 영특하고 영악하던가. 그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것들을 ‘불편’이라는 이름으로 치부해버리고,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편리하게 변형시켜버리던가. 실용적이라는 이름으로, 또 편의성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아직 어둠이 사방을 덮고 있는 신새벽이다. 애들이 올라가야 해서 우리끼리만 먼저 다녀오기로 했다.

“아빠, 뭔 별이 이렇게 많아?”

마당에 내려선 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친다.

“이야! 이렇게 많은 별은 처음 보네라.”

아들도 하늘을 치어다보며 입을 벌린다.

아이들을 데리고 별이 총총한 새벽길을 걷는다. 그러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빽빽이 들어선 솔밭의 솔방울만큼이나 많은 별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그중에 빛나는 별 몇 개를 찾는다. 저 별은 한압시별, 저 별은 우리함마이별, 저 별은 아부지별, 그리고 저기 유난히 밝게 빛나는 건 사랑하는 내 아우별.

나는 왜 어른들이 그 이른 새벽에 성묘를 나섰는지 알 것 같았다. 어쩌면 그들은 일년에 한번만이라도 지상에서 떠난 사람들을 별의 이름으로 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일년에 꼭 한번만이라도 새벽의 하늘을 우러르며 지나간 사람들을 생각해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그들이 했던 것처럼 일년에 한번만이라도 애들을 데리고 이 새벽에 별을 우러르기로 약속한다. 꼭 한번만이라도.

산소에 갔다가 올라간 다음날, 아들에게서 톡이 왔다.

‘아빠, 꿈에 할아버지가 나오셨네. 여럿이 나오셨는데, 아마 옆에 계신 분들은 조상들인 모양이야.’

아,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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