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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이

[에세이-맑고 향기롭게] 도현스님 / 청산도 백련암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1.19 23:06
  • 수정 2019.01.19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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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이는 강아지 이름이다.
범바위에서 왔다는 뜻에서 범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범바위 전망대를 집 삼아 주로 살아왔던 범이의 어미개가 낳은 어린 강아지를 분양받아 키우던 분이, 잠시 맡겨두었던 것을 우리가 맡아 키우게 되었다.

2010년도 10월쯤 동촌마을 할머니 정자나무 아래에서 범이를 처음 보았던 것 같다.
하얀 털옷을 입은 자그마한 강아지를 처음 본 그 순간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저 강아지는 나와 인연이 깊구나, 때가 되면 나와 같이 살겠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본 강아지지만 그리운 사람을 오랜만에 마주한 것처럼 애잔한 마음이 한가득 들었다. 그 때는 뉘 집 개인 줄 몰랐었다.

몇 달 뒤 범이는 절 마당에서 뛰놀게 되었다. 개 주인이 외지의 볼 일로 청산도를 비울 때면 잠시 절에 맡겨두었는데 어느 날부터 아예 우리개가 되었다. 절에 손님이 오면 제일먼저 뛰어 내려가 반겨주고 길 안내를 하여 올라온다.

주차장에 차가 들어서면 어느 새 내려와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고, 총알처럼 바람을 가르며 경사진 길을 뛰어 내려오는 모습으로 반겨주기도 했다. 사람을 좋아하여 누구에게나 애교가 넘쳤지만 연약한 작은 강아지의 몸은, 하늘에서 매가 노리는 대상이 되었고, 땅에서는 큰 개가 시기하는 질투의 대상이었다.

생선을 좋아하여 멸치 나올 때는 마른 멸치를 구해서 간식으로 주었고, 모임 있는 날 식당에서 식사 할 때는 남은 생선이나 고기들을 얻어와 푹 끓여 먹게 했다.  과일 중에는 배와 사과 수박을 좋아하였고, 바랭이새 풀을 늘 뜯어 먹어서 범이를 위해 도량 주변에 바랭이새 풀을 매지 않고 두었다.

처음 목욕 시킬 때는 두려워 몸을 떨더니, 두 번째 목욕할 때는 느긋하니 즐겼고, 세 번째는 원하는 자세를 취하며 뽀뽀인사까지 했다.
목욕에 적응하는 모습이 할 때 마다 확실히 달랐다.

한가할 때면 범이의 사진을 찍었다. 처음엔 찰칵 소리에 놀라 도망가더니, 느긋한 표정이 되고, 따뜻한 햇볕이 마루까지 깊이 들어오던 날, 그날은 마루에 앉아 카메라 렌즈를 보며 미소까지 환하게 보여 주었다.
지금 노트북 첫 화면을 장식하고 있는 사진이 그날 찍은 사진이다.

범이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떠오를 때면 마음으로 발원한다. “범이야. 사람 몸 받아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자”.
좋은 인연으로 남겨지는 것은 서로의 노력과 배려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동물과의 인연도 이럴진대 사람과의 관계는 말 할 것도 없겠다.
 

도현스님 / 청산도 백련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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