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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그가 보내는 마지막 크리스마스라

[에세이-고향생각] 배민서/ 완도 출신. 미국 거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1.19 19:10
  • 수정 2019.01.1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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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나는 죄수들이 입원해 있는 병동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입구에 벨을 누르니 무장한 경찰관들이 "Good morning! "하며 나를 맞아주었다. 무슨 흉악한 죄를 지었는지 발목마다 수갑이 채워진 환자들은 침대에 누워있었고 경찰들은 모니터를 통해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인도출신 닥터 지이는 이곳까지 왠일이냐며 "암병동 최고의 간호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너희들에게 왔구나!"라며 큰소리로 말했다.

그의 칭찬은 나를 들뜨게 만들었고 정말로 나는 그의 말처럼 환자들에게 즐거운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어주고 싶었다. 내 환자 중에는 수술 후 회복 중인 환자와 만성 신부전증, 그리고 암 말기상황에서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도 있었는데, 말기 암환자는 더부룩하게 자란 자신의 구렛나루 수염을 다듬고 싶어했다. Assessment와 아침식사 그리고 투약을 마치고 조금 한가해지자 나는 따뜻한 물을 대야에 받아 간이 테이블에 놓고 그를 침대 가로 부축해 앉혔다. 그의 손은 경련과 마비증세로 스스로 면도하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였다. 누군가의 면도를 대신해 준 적이 거의 없었던 나였기에 잔뜩 긴장해서 그환자의 목과 턱의 길고 곱슬거리는 털을 면도하고 있는데, 그가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실수해서 피가 좀 나도 괜찮아~ 어차피 나는 곧 죽을텐데 뭘~~ 하하"

우리는 웃으며 대화를 주고 받았지만, 오늘이 그가 보내는 마지막 크리스마스라는 생각을 하니 왠지 서글퍼졌다. 그에게 남아있는 시간들은 얼마나 되는 걸까? 그의 상태로 미루어보아 2주, 아니면 3주, 길어야 한달 남짓일거 같았다. 그의 배는 복수가 차 불룩했고 숨을 쉴 때마다 폐에서는 휘파람소리가 났으며, 하체는 퉁퉁 부어 푸르댕댕 한 채로 묵직한 수갑이 짖누르고 있었다. 나는 다시 대야에 물을 받아 바닥에 내려앉았다. 따뜻한 물 속에 얼음장같은 그의 발을 담구고 맛사지하듯 씻기기를 시작했다. 말라서 갈라져있던 각질들이 허물처럼 서서히 아주 서서히 벗겨지더니 발그레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깨끗한 타올로 물기를 닦아내고 로션을 바른 후에 양말을 신겨주니 그의 잿빛 눈동자에는 눈물이 그득 고여있었다.

"God bless you!" 그 이후, 나는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이처럼 내 손끝을 스쳐간 죽음의 그림자들은 나에게 멈춰 세울수 없는 시간이라는 명제를 선물처럼 사유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떠났고, 나는 아직 살아 남았다는 단순한 안도감은 아니었다. 시간이라는 주관적 개념 속을 뚫고 들어가 본질적인 무언가를 만나야겠다는 강한 집념이 내 안에서 서서히 소용돌이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연필 드로잉 33점, 유화 2점, 아크릴화 3점, 크레용화 5점, 수채화 2점을 그려냈고, 직장에서는환자들로 부터 가장 많이 사랑을 받았던 간호사로 뽑히기도 했었다. 노력의 댓가였는지 달려가고픈 무언가가 늘 나를 설레게 만들었으며, 홀로 도전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된 참으로 감사한 해이기도 했다.

생각해 본다. 나는, 내 생에서 몇 번이나 더  새로운 해를 맞이할 수 있을까? 얼마가 남았던지......, 그 남은 날들이 늘 환희로운 꿈을 꾸며 설레는 가슴으로 도전하며 희망하는 날들이 되기를 나는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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