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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를 믿지 마라!” 그러면 누구의 말을 믿을까?

[완도 논단] 김정호 / 본보 발행인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1.19 18:25
  • 수정 2019.01.1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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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 본보 발행인

중국 태평성대 구가 강희제, 오배의 난을 맞아 귀가 열려
중국 역사가들이 중국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황제를 3명 고르라고 하면 보통 한나라 무제 유철, 당나라 태종 이세민, 청나라 성조 강희제 애신각라 현엽이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전성기를 누렸다는 나라들의 황제 3명 중 2명이 이민족이라는 것도 아이러니한데, 당나라의 황제들은 선비족 출신이고 청나라의 황제들은 만주족이었다.
그 중에서도 중국 역사 상 가장 태평성대를 이뤘다는 황제는 청나라의 강희제이다. 아버지인 순치제의 죽음으로 불과 8살밖에 안 되는 나이로 황위에 등극한 강희제는 누구보다도 능력이 있고 열심히 일을 하는 황제였으며 체력도 또한 좋아서 61년 동안 황제로서 재위한다.
초기에는 할머니인 효장문태후의 교육을 받으면서 고명대신 4인의 섭정을 받았다. 4인의 섭정 중에서도 병부상서 오배가 제일 권력이 막강하였다.
오배는 백성들의 땅을 불법으로 획책하는 등 갖은 전횡을 일삼았지만 병권을 틀어쥐고 있어서 아직 친정의 권한이 없는 강희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강희제는 나름 오배를 견제하기 위해 또 다른 보정대신인 색니의 손녀를 황후로 맞아들이기도 했지만, 결국 오배는 반란을 일으킨다.
이 반란은 예견된 것이었지만, 한편으론 강희제가 뒷통수를 맞은 것이도 했다. 강희제의 뒷통수를 때린 것은 오배를 감시하던 관리들의 괜찮다는 상소 때문이었는데, 이때 중국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여인 효장태후가 손자인 강희제에게 말한다. 
"어디, 믿을 게 없어서 상소를 믿느냐? 네가 황제를 제대로 하려면 상소를 믿지 마라!"였다. 이 말은 결국 리더는 현장성을 중시하고 어떤 사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의 묘에 관한 일침이다.
현재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신우철 군수의 위태로움이 여기에서 기인하고 있다. 민선 6기 때 주민들의 한결같은 말은 군수에게 이야기하면 무엇인가 될 것 같은데,  다시 도로묵이 돼 버려 더 이상 전언을 않게 된다는 것.

신상필벌 제대로 안 돼...리더의 객관적인 눈과 운영성
올초부터 완도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부상해 연말까지도 식지 않고 있는 변환소 문제와 신지와 고금 등 일부 읍면에서 돈사 신축이 추진 되면서 주민들의 반대 현수막이 게첨과 함께 군청 앞 반대 집회가 이어지는 등 지역이 분열되고 큰 혼란이 야기됐던 사건, 민선 7기 들어 조직개편과 맞물려 단행된 첫인사까지, 논란과 갈등이 증폭됐던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가 효장태후의 말대로 신 군수가 상소를 더 신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사건에 있어서도 차후 깨달았음에도 '신상필벌(信賞必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200여년 전 전국시대의 사상가 한비자는 인간 성품의 부정적 측면에 주목해 '신상필벌'의 원리를 세상에 제시했다. 나라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서는 강제적이고 타율적인 '법(法)'을 엄정하게 세우고 추상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한비자의 주장이었데, 이는 곧 리더의 객관적인 눈과 운영성을 말하고 있다. 효장태후나 강희제처럼 동서고금 이름 난 지도자를 보면 하나같이 ‘객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특히나 요즘같은 난국에는 과연 완도군 전체를 보았을 때, 무엇이 더 풍요로움인지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느냐? 이것이 핵심이다. 변환소 문제와 군 청렴도, 그리고 지역경기침체 또한 객관적인 판단의 결여다.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느냐?

백성을 물이고 임금은 배, 배를 뜨우지만 뒤집을 수도
“백성은 물, 임금은 배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의 내용이다. 군주민수의 대표적인 사례는 국정농단에 분노한 민심과 암울한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비리, 최순실씨로 상징되는 비선의 실세들의 국정농단에 국민이 분노해 촛불 혁명을 일으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강희제가 오계의 난 이후, 큰 깨달음을 얻고 중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통치 철학인  '국궁진력(鞠躬盡力)'이다. '국궁'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활처럼 구부린다는 뜻이고, '진력'은 온 힘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국궁진력'이란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구부려 온 힘을 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 해석해 봐도 이 말은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황제가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당시 동아시아 왕조 국가에서는 그 어디서도 있을 수 없는 발상이었다. 굿 리더(Good leader)를 넘어선 그레이트 리더(Great leader)의 모습. 강희제는 뒷마무리가 깔끔하고 끝이 좋은 그레이트 리더였다. 60년 넘게 천하를 이끌었지만 "한 가지 일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온 천하에 근심을 끼치고, 한 순간을 부지런하지 않으면 천대 · 백대에 우환거리를 남긴다."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강희제. 답은 주민의 목소리를 얼마나 많이, 그리고 직접 듣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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