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잘나지 못해도 주어진 성품대로

[완도의 자생식물] 77. 떡쑥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9.01.19 15:54
  • 수정 2019.01.19 15:58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떡쑥 꽃 옆에서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시처럼 살지 않아도 좋으니 떡쑥 꽃 삶에서 빚어진 찰진 쑥떡처럼 사라고. 잘나지 못해도 주어진 성품대로 한결같이 지켜주라고. 먼 데에서 귀히 찾지 말고 가까이 있는 사람과 후덕하게 지내라고. 어머니의 무딘 손마디에 피어나는 떡쑥은 한없이 정이 깊다. 쑥새 발끝에서 반짝반짝 별이 된 잎사귀. 그 깊은 곳에 가장 부드러운 마음이 숨어 있다. 아스라이 겨울 햇볕을 먹고 사는 떡쑥은 매서운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겨울나기가 가능한 치자나무와 서향이 있다.

치자는 늦여름에 하얀 꽃을 피우고 서향은 이른 봄에 붉은빛으로 꽃을 피운다. 둘 다 상록수이면서 향기가 좋다. 치자 열매는 한겨울에도 나무에 달려 여름날에 하얀 옷고름 속에 숨겨놓았던 향기를 보는 듯하다. 땅에서는 아주 낮게 잎을 펼쳐 겨울나기를 하려는 풀꽃들이 있다. 냉이, 씀바귀, 별꽃, 큰개불알꽃, 광대나물 등이 어렵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양지쪽에서 작게나마 부드러운 손을 내민 두해살이 떡쑥이 있다. 남도에서는 범츄라고 부른다.

봄에 꽃대가 올라와 노랗게 꽃을 피운다. 이때 잎과 꽃을 말려 참쑥과 섞어서 쑥떡을 만들면 부드럽게 찰진 쑥떡 맛을 올릴 수 있다. 이제는 나이 든 어머니들만이 이 떡을 해 먹는다. 지금은 따뜻한 양지쪽에서 하얀 잔털을 달며 에델바이스 잎처럼 귀엽게 가까스로 나오고 있다.

이른 봄에 꽃대가 올라오고 잎은 드물게 어긋나게 난다. 노란 떡쑥꽃은 사람들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겨울에는 땅에 엎드려 있고 봄에는 가늘게 잎사귀가 나오면서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못생긴 야생화지만 이슬만 내리면 그 연한 잎이 강인한 생명으로 이어간다. 때론 사람의 발밑
에서 밟힌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침묵할 뿐 절대 죽지 않는다. 무딘 손이지만 자식에게 줄 것은 한없이 나왔다.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면서 그것이 어렵다는 걸 알았다. 물질이 풍요로운 시대가 왔지만 후손들에게 줄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못 살 때가 줄 것이 더 많았다.

엄마 곁에서 후덕한 정을 담고 있는 떡쑥꽃들은 서로 한몸을 이루고 있다. 눈에 뜨이게 아름답지 않은 떡쑥꽃 옆에서 쓰디쓴 인내와 고통을 겪어야만 자식에게 줄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걸 이제 알았다. 실꾸리처럼 자식에게 줄 것이 한없이 나왔다는 사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러야 했을까. 이른 봄에 떡쑥꽃 옆에서 노란 씀바귀 꽃도 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