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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호'(1)

[여서도 이야기] 정택진 / 소설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9.01.19 09:51
  • 수정 2019.01.1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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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곳을 ‘여호’라 불렀다. 그 조부님은 할머니를 ‘매씨’라 불렀고, 할머니는 그 분을 ‘자네’라 했다. 그 조부님도 처음 보았지만 두 분이서 쓰는 용어들도 나에게는 생소했다. 그 조부님은 이레 정도를 우리집에 머물렀다. 그곳에 다니는 정기 여객선이 없었고, 그곳 바다는 여차하면 배를 못 뜨게 했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 뒤로도 그 조부님은 몇 번 더 우리집에 오셨다. 그때마다 우리는 몹시 불편했다. 방이 두 개밖에 없는 초가집이어서, 그 조부님은 우리들과 한 방을 써야 했는데, 좁은 방에서 낯선 조부님과 대엿새를 같이 지내는 것은 참 불편한 일이었다. 일을 봤으면 빨리 가시면 쓸 것인데, 그 조부님은 몇 날을 부순방에 앉아 밖만 내다보시며 있었다. 그것이 사실은 날씨를 보는 것이었는데, 어린 내 눈에는 남의 집이라 할 일이 없어 그저 하는 몸짓으로 보였다. 조부님이 봉창 유리로 밖을 내다보고 있는 그 며칠을 나는 이웃집에서 놀다 밥때와 잘 때만 집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서도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배돌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있다 조부님이 집을 나서면 함마이는 질앞까지 따라 나가는 것이었는데, 한참을 있다 들어오는 함마이의 눈에는 그렁한 것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며칠 만에 간신히 숨을 크게 내쉬어보는 것인데 함마이는 뭐가 섭섭한지 모르겠었다.
나중에야 나는 ‘여호’가 ‘여서리’이고, ‘매씨’는 ‘누이’를 가리키는 말임을 알았다. 그러니 그 조부님은 할머니의 남동생이고, 아버지에게는 외삼촌이며, 나에게는 ‘진외종조부’가 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여호’는 내 ‘진외가’가 있는 곳이었다.
 

‘여호…….’
소 뜯기러 가서 보면 저만치에 떠 있는 조그만 섬. 제주도가 보이면 이만큼 가까워지고, 제주도가 사라지면 희미하게 멀어지는 섬. 날이 맑으면 뗏마 타고 갈 수 있을 듯하지만, 날이 흐리면 저기 멀리 태죽으로만 보이는 섬. 있다가는 없어지고 없다가는 다시 있어지는 신기한 섬. 그 조부님은 여러 차례 왔지만, 우리 할머니는 시집 와서는 한번도 못 가보고 말은 섬. 그래서 언젠가 꼭 한번 찾아가 술 한잔 따라드리고 싶던 그 섬,…… 아, 여호.

할머니보다 나는 먼저 담에 술을 따라야 했다. 동네에 다가서자 앞을 턱 가로막는 높디높은 담벼락에 나는 먼저 무릎을 꿇어야 했다. 손바닥만한 납작납작한 돌로 마치 하늘에 닿으려는 듯 쌓아올린 그 돌탑에 나는 우선 마음을 엎드려야 했다. 단지 바람을 막으려는 의도가 아니라 담을 쌓는 일을 공을 드리는 일로 여기고, 신께 기도드리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쌓아 올린 듯한 그 돌담에 나는 서둘러 옷깃을 여며야 했다.

나는 성벽처럼 솟아 있는 담 앞에 조그맣게 복지부동한 채 옛날을 상상했다. 누군가가 처음으로 이 섬에 들어왔을 거다. 뗏마를 타고 죽을 둥 살 둥 왔겠지. 이곳이 목적지였기보다는 그냥 떠밀려 왔을 거야. 저 위에서 쫓겨 왔을 수도 그냥 무슨 사정 때문에 왔을 수도 있겠지. 어찌 됐든 살아야 했을 것이므로 집을 먼저 지었을 거야. 터을 마련하기 위해 경사진 곳에 담을 쌓았을 거야. 저리토록 물매가 싸니 평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높이높이 쌓을 수밖에.

담을 쌓아 흙을 메우고는 그 위에 집을 지었겠지. 그런 뒤에 갯바람을 피하려고 집보다 높게 담을 쌓았겠지. 그러니 올려다보면 서너 길도 좋고 너덧 길도 좋은 담이 되었을 거야. 틈틈이 먹을 것도 마련해야 하니 한번에 쌓지는 않았겠지. 한 달도 좋고 일 년도 좋고, 때로는 평생에 걸치기도 했을 거야. 담을 쌓는 일을 사는 것으로 여겨 일생을 그것으로 채웠을지도 있겠지. 내 생각들은 담에서 담을 타고 끝없이 이어졌다.
 

귀샅을 오르는데 숨이 벌써 헐떡거렸다. 동네 뒷산 ‘대세이’의 비탈을 타는 듯했다. 숨을 가누며 올려다보는 담은 높기만 했고, 좁은 길은 가파르기만 했다. 아무리 작은 섬이라지만 이 급한 경사에 집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살 곳이 팍팍하다 해도 이런 절해고도까지 들어올 것은 무엇이며, 설사 섬에 들어왔더라도 이 가파른 곳에 터를 마련할 것은 무엇인가. 대체 물동이를 이고 이곳은 어떻게 올라다녔을 것이며, 지겟짐을 지고 이 좁은 귀샅은 어떻게 오르내렸을 것인가. 누군가가 올라오면 저 위에서는 비켜선 채 기다려야 하고, 그가 지나가야 길을 걸어내렸을 것인데, 보로시 한 사람이나 지나갈 이 귀샅을 그들은 어떻게 지나다녔을 것인가.

나는 겨우 나 혼자 지날 수 있는 좁은 고샅 한가운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담불 사이로 보이는 여서리의 하늘은, 그 땅의 질앞처럼 좁게, 아주 좁게 열려 있었다.
 

정택진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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