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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바다도, 하늘도, 심지어 사찰도 푸른 청산도[청산 특집] 3. 고려시대 혜일스님 창건 7백년 역사 간직한 백련암
박주성 기자 | 승인 2019.01.05 09:02

청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청산팔경 중 대봉산 백련사도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다. 8경 중 3경에 '대봉연사'라 하여 “백련사의 목탁소리 대봉산에 메아리치고”라는 대목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청산도의 유일한 암자인 백련암은 자환·도현 두 자매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두 스님 모두 수행과 인연이 있어 출가를 했는데, 언니인 자환스님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정도였고, 동생인 도현스님도 20대 때 출가를 했는데 큰스님을 뵈었더니 “출가를 하면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좋을 것”이란 한마디에 뒤도 안돌아보고 한달 안에 정리하고 오겠다고 했단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출가를 권유했던 큰스님이 도현스님의 결단에 “너 같은 사람이 그동안 없었다”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외부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백련암의 역사는 꽤 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적조에 나타난 선산도(예전에 불렸던 청산도의 다른 이름), 청산은 당시 강진현에 속해 있었으며 고려의 정언 이영(?~1277년)이 완도에 귀양 왔는데, 이 후 그의 숙부 혜일스님이 따라와서 곧 섬(청산도)으로 들어가 절을 세우고 살았다라고 기록돼 있다. 백련암의 기원이 고려시대에 닿아 있는 것이다.

기록상으로 보면 무려 700년 이상된 암자이지만 2014년 간행된 청산면지 기록을 보면 원래의 절터는 현재의 장소가 아니였던 모양이다. 청산면지에는 “처음 절터에 대한 구전은 대선산 기슭 도청리 뒤편과 솔중산 지리에서 진산리 음지편으로 가는 석굴이 있는 기슭 두 곳에 옮겨졌으나 두 곳 모두 도깨비의 화가 미치어 살지 못하고 대선산 동편, 읍리 뒤편 지번 산 34에 옮겼으나 빈대의 재앙으로 살지 못하고 현재의 백련암 자리로 옮겨졌다고 한다”고 나와 있다. 아울러 1924년 갑자년에 편찬한 완도군지 기록에 의하면 1760년 경진에 출생한 함양 박씨 태려 공본면 읍리 거주 박정휴, 청산면 부흥리 출신 광주 거주 박광열 육대조가 서기 1800년대에 백련암을 창립하시고, 본관 미상 김득홍 공이 중수하였다는 내용을 덧붙이고 있다.

백련암에 오르면 가장 먼저 수령 300년 정도된 오래된 50여 그루 동백나무로 구성된 숲을 만나게 된다. 사람 몸통만한 좀처럼 보기 힘든 동백나무의 굵기는 오랜 나이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동백나무 숲을 지나면 대웅전이 보이는데, 한국불교계의 마지막 선승으로 불리우고 있는 인천 용화선원 송담스님이 직접 쓴 '대웅전' 글씨가 걸려 있다. 대웅전과 옛 요사채는 흙과 돌을 섞어 지은 토굴이다.

바다를 생활터전으로 삼는 이들에게 사찰은 태풍에 살아남고, 풍어를 기원하는 정신적 안식처이다. 그 옛날 장보고대사가 법화원을 중국과 한국(완도, 제주)에 건립해 항해의 안전을 기원했던 것처럼 말이다. 백련암도 그동안 그래 왔으며, 앞으로도 종교가 있는 한 그 역할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도량이 이제는 24년전 현재 주지스님인 자환스님이 주석하면서 수행도량으로 탈바꿈됐다고 한다. 선방을 다니며 정진하던 스님은 멈추지 않는 수행을 위한 터를 찾다가 우연히 청산도와 인연을 맺었다. 송담스님에게 화두를 받아 정진하던 스님은 백련암에 주석하면서 대웅전 위쪽에 작은 선방을 마련했다. 이제는 신도들도 절을 찾아 ‘진짜 공부’를 위해 스스로 참선을 하곤 한단다.

이밖에도 청산도 백련암에서 소장 중인 1865년 제작된 천수관음보살도(탱화, 불교의 신앙내용을 그린 그림)가 오랜 세월을 거쳐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내 화제가 되고 있다.

백련암 천수관음보살도는 화면 하단 외부에 적힌 화기(불화 조성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에 대한 기록)와 복장(불상을 만들 때 보화나 서책 따위를 넣는 것)에서 발견된 원문에 의해 조성연대와 봉안사찰 및 조성화원 등이 분명하게 확인된다.

이 자료들에 따르면 백련암 천수관음보살도는 1865년 대둔사(현 대흥사) 낙서암의 상단탱화로 봉안되었던 불화로서, 초의선사를 증명으로 하여 19세기 후반에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화승 기연 등 5명의 화승들이 함께 조성했다. 또한 채색 중심의 불화와 달리 붉은 색을 칠한 비단 바탕에 백색의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육신부 일부에만 칠을 한 선묘불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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