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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핀을 사색하는 일은 은밀한 내 비밀을...

고향생각( 배민서)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12.03 11:37
  • 수정 2018.12.03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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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는 앉은뱅이 낡은 재봉틀이 있었다. 투박한 몸통에는 작은 구멍들이 있었는데 엄마는 마치 재봉틀의 입이나 되는 것처럼 기름을 쪽쪽 짜서 먹여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기만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엄마는 무언가를 누비고 박아 내 앞에 슬며시 내미셨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학교 준비물인 걸레였다. 엄마가 만들어 준 걸레에는 일자로 누벼진 배경속에 꽃의 아우트라인이 촘촘하게 박혀져 있었다.

우리집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에 운동회 예행연습을 보러 엄마가 동네 아짐들이랑 학교에 오기도 했었다. 총성이 땅~하고 터지면, 나는 그 소리에 놀라 움찔대다가 늘 다른 애들보다 뒤쳐지기가 일쑤였다. 여덟 명 중에 7등을 하는 내가 안쓰러웠던 걸까?
"팔을 일케, 주먹은 꽉 쥔채로 앞 뒤로 빨리빨리 움직여 보그라" 하며 엄마가 팔을 앞 뒤로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가을 운동회 날 입을 까만색 반바지도 그 투박한 재봉틀로 직접 만들어 놓으셨다. 꽉 조이지도 헐렁하지도 않는 길이의 고무줄이 옷핀에 묶힌 채로 재봉틀이 만들어 놓은 터널 속으로 들어 갔을 것이다.

옷핀은 좁고 답답한 길 속에서 자신을 밀고 땡기는 압력을 견디며 출입구를 빠져나왔고 신축성 좋은 고무줄은 내 허벅지와 허리를 기분좋게 감싸고 있었다.
 얼마 전에 어느 분이  '옷핀'이라는 명제를 내게 주시며 "엣세이 한번 써 보세요"라고 말했다.
옷핀을 사색하는 일은 은밀한 내 비밀들을 들추기라도 하는 듯 당혹감으로 붉어져야만 했다. 갑자기 허리에서 단추나 후크가 톡~ 떨어진다거나 난감하게 실밥이 토도독~ 터지는 아찔한 찰라가 먼저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내게 옷핀은 마치 숨겨놓은 애인처럼 뜯어진 치맛단 속에나 나의 은밀한 곳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옷핀은 바늘처럼 뾰족한 총기를 지녔으나 그 날카로움을 스스로 감싸 안았기에 안전한 핀(Safety pin)이라고 불리어 졌다.
지난 주, 릴케가 젊은시인에게 보낸 편지를 읽다가 나는 지극히 감동하고 있었다.
 '외부로만 향하고 있는 당신의 눈길을 거두고, 이제는 당신의 마음 깊은 곳, 내면으로의 전향(轉向)으로부터, 자신의 고유한 세계로의 침잠으로부터 시가 흘러나오게 된다면,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시가 좋은 시인지 아닌지를 묻는 일은 무의미하게 됩니다.
훌륭한 예술작품에 대한 판단은 그 생성의 뿌리에 있으며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은 자체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내면에서 그리고 자신과 한 몸이 된 자연에서 구해야 하니까요.'

시공간을 초월해 작가 릴케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싶어하는 나에게 다정한 메시지를 전했다. 생명력있는 작품을 탄생시키고 싶다면 옷핀처럼 치열하게 자신을 연마 할 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 속에서 나 자신이 또 하나의 세계가 되어 자연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그가 말한다.
작품의 뿌리가 되는 자신을 가꾸는 일, 어쩌면 그 길은 옷핀이 창조라는 줄을 가지고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 하는 것처럼 아득하지만,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기 위하여 나는 기꺼이 사유의 골방을 선택하고 싶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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