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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찾으면 왜? 부자가 될까

[에세이-반짝반짝 빛나는] 김지민 / 에세이 작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11.23 11:20
  • 수정 2018.12.1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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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 / 에세이 작가

신이 어느 날, 나더러 어디 있었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저 부서진 것들 위에서 태산처럼 무거운 영혼을 짊어지고 걸어왔노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만나고 엇갈리는 게 기억이 아니라 망각 속에서 피웠다 지는 꽃잎처럼, 그 꽃잎 위에 잠시 내려앉았다가 떠나는 나비처럼.

그럼에도 아직 내가 그 치열한 시간 속에서 눈물 젖은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은 더한 그리움으로 떨어지는 잎새의 그림자로 오늘이 기억되고 싶기 때문이다. 흘러간 날의 슬픈 영혼은 아직 잊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슬픈 영혼을 안아 줄 단 한 곳.
지금, 그곳을 거닐고 있었다.

완도를 기준으로 네트워크처럼 연결된 다리들 섬과 섬을 연결했던 배들은 포구에서 잠깐 숨고르기를 하고 하늘끝에 매달려  긴 길을 부여잡은 직선의 팔뚝을 가진 거인들이 바다에 심지를 묻고 푸름을 버텨내고 있었다.

바다를 걸었고, 바다를 달렸다
하늘을 걸었고, 하늘을 읽었다

부표처럼 바다를 둥둥 흐르는 다도해, 그들이 부르는 맑은 노래가 뱃고동에 실려 가슴으로 밀고 들어온다. 어쩌지 못하고 가장 자리 좋은 곳으로 내주고 말았다. 한없이 여유를 가져오는 여행길이라서 욕심은 바다 고기 밥으로 던져 주기로 한 날이라서...

따뜻한 바람이 얼굴에 달라붙어 움직이질 않는다. 바람은 바다에서 산으로, 산에서 들로, 완도에서 해남으로 또 강진으로...넘나들며 사람만큼 바쁘게 하루를 살아가는 곳, 남도의 가을은 완만히 흐르는 능선을 덮고있는 상록수의 푸르름이 아직 여름이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그것뿐인가 추수가 끝난 논에서는 잘라낸 누런 벼 뿌리에서 초록빛 꿈틀이들이 올라오고 있는 걸 보니 잠시 가을이 집나간 듯 한 계절을 마주하기도 했다. 대관령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넓은 배추밭을 해남에서 마주쳤다. 늦둥이 배추들은 겨울이 코앞인데 속을 텅 비워놓고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여전히 따듯한 숨을 쉬는 내 고향 남쪽을 구석구석 헤집고 나서야 편안함을 어깨에 둘렀던 하루. 바다가 뿌려 놓은 향수에 취하고 붉은 황토흙이 분칠을 해 놓은 땅에 안겨본다. 밀어내지 않고 끌어 안아주는 고향이라는 곳이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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