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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순간도 잊지 못한 채 당신을 셈하며 살아왔소[특집] 모도 사나이 장남세의 인생과 사랑 이야기
김형진 기자 | 승인 2018.11.16 10:57


몹시도 가난했던 화가 클림트.
그가 사랑했던 여인, 플뢰게!
돈 많은 상류사회의 남자들은 화사한 꽃과 화려한 마차로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가난한 청년 화가는 사랑하는 그녀에게 해 줄게 없어 직접 꽃을 그리고 오려 사랑하는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가난한 화가 클림트가 떠올랐다.
어느 날 본보 편집국에 도착한 한 장의 편지를 보자.

"시간이 물러다 준 선물이란 당신과 나와의 만남을 즐겁게 해주는 태양과 달입니다. 체포되던 날 당신의 당황한 얼굴과 태연하면서도 불안한 나의 심장이 뛰던 날이 엊그제 같것만 뼈아픈 세월이 흘러 두 달이 담을 넘고 넘어 내 당신을 만나 눈물과 미안함과 후회와 기쁨의 정담을 나눌 날도 이젠 얼마 안 남았소."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나에겐 귀중한 추억의 재산이었고 당신을 생각한다는 것이 옥중에서 제일 괴로운 일인지 알지만 그 괴로움의 고통을 한 번도 잊어보지 못한 채 당신을 셈하여 살아왔오."

감옥에서 사랑하는 여인에게 그동안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보낸 편지.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군대에 갔던 혈기왕성한 의기로운 청년은 박정희의 장기 집권과 독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휴가를 나왔다가 복귀를 미기하면서 헌병대에 끌려가 사상과 이념성에 대한 죄까지 더해 2년 2개월의 형을 받게 되었다.

젋음이 그러지 않던가! 
살아갈 날이 구만리 같은 미완성인 동시에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이라는 역설, 편지에선 다신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 애절하게 묻어난다. 편지는 계속 되었다.

"부족했던 우리나라 한참 꿈의 설계가 영글어 갈 때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미칠 것만 같았으나 그건 지나간 옛날이 되었고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재미있고 감사할 뿐이요."
"당신은 우리의 가정을 갖기도 전에 너무나 큰 충격을 가졌고 눈물과 허탈속에 살아 왔으리라 믿소. 내 출감한 날부터 내 그대를 위해 오늘을 살고, 또 내일을 살아가리라!"

편지의 내용으로 봐선 클림트의 그림엽서 못지 않게 가슴 뜨거운 남자다.

쓴 이는 청산 모도의 장남세 어르신.
편지의 끝은 "괴로웠던 70년도 이젠 아듀를 고했고 신년부턴 우리의 해로 잡읍시다. 당신의 얼굴을 그리면서 안녕을 고하오. 1971년 1월 24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그가 사랑하는 여인, 박종지.
소안도가 고향이라고 했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했다. 모도교회의 권사이자 요양보호사이며, 1남 4녀의 어머니이면서 장남세의 영원한 아내라고 했다.

그는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선 4`19 혁명 때는 집회에 참여했고, 박정희 쿠테타의 부당성과 제국주의의에 충성했던 군인 출신이란 비판 때문에 중앙정보부 지역 본부에 끌려가 고초도 겪었다고. 민주동지회 결성 때는 청산도 협의회장에, 참여연대 결성 당시엔 공동대표로 적극 추천되었으나 고사해 초대 감사를 맡게 되었다고.

불합리와 불평등에 대한 저항정신의 야당 기질 때문에 관에서는 미움을 많이 받았고, 11년간 마을 일을 보면서 마을을 발전시키지 못한 게 주민과 이웃에게 늘상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했다.

딸에 대한 애틋한 편지도 공개했다.

"인영에게, 가을의 한낮 따가운 햇볕이... 덧 없는 시간의 흐름과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구르몽의 낙엽의 시상이 떠오르게 하구나!"

"네가 보내준 책이랑 편지를 잘 받았고 이 아버지의 마음은 기쁨보담 무겁고 어두운 중책감에 내 심혼을 무겁게 누르고 있다."  "너에게 보탬을 준 아버지보다 부담을 안겨주었단 자책감이라 할까? 아버지가 책에 대한 욕심이 많았나 보다 늙은 나이에 독서에 파묻히다보니 너에게 어려운 부담을 준 것 같구나!"

딸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이 묻어 나는 편지. 그러면서도 아버지로서 부족함과 부끄럼이 없는 삶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까지.

마무리는 "인영아 형제간에 우의있고 윗사람을 존경하며 항상 조심하고 세밀히 살피고 건강한 민주시민으로써 부족함이 없도록 인격 형성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사랑스런 딸에게 아빠로부터 1989. 8. 28", 전인적 인간의 삶을 당부하고 있다.

그에게는 아직까지 핸드폰이 없어 집전화로 잠시 목소리를 들었다.
막내딸 은별 씨 이야기를 전한다.

"엄마만 생각하면 늘 눈물이 난다. 제주도 밀감 따기, 부산 기장 미나리 채취, 미역 공장에 다니면서 조카들까지 키워낸 엄마. 엄마가 사는 집은 가장 슬펐지만,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집이었다"고.

아내가 어떤 존재냐?고 묻자, 그는.

"가난한 내가 어쩌다보니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해 줄 게 너무 없습니다. 난, 당신을 바라보기만 해도 나의 눈은 세상, 어떤 보석보다도 진귀하게 빛납니다. 내 영혼의 마지막 연인, 생애 단 한 번 벼락을 맞은 것처럼 하나님이  내게 준 축복! 나의 모든 것이지요".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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