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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에 만나는 열정

[완도의 자생식물] 72. 백당나무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11.16 10:49
  • 수정 2018.12.1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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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은 하늘의 천사인가 봐. 열매는 마음으로 지극히 인간적인가 봐. 꽃은 하늘이 없으면 그 자리도 없다. 그러나 열매는 그대로의 마음의 자리인 셈. 어느 날 갑자기 꽃이 피면 그 옆에 있으면 돼. 그리고 산과 바다를 무심코 지나가면 꽃이 되고 푸른 잎이 돼.

지난 것을 잊어버려야 순간이 되고 지난 꽃자리도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붉은 열매에서 순간을 보게 된다. 백당나무 꽃은 봄의 꽃들이 다 지고 나면 산 속 낮은 곳에서 살며시 얼굴을 내민다. 꽃의 방향은 하늘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열매는 아래로 향한다.

꽃은 하늘로 산으로 들로 가고 있지만 열매는 오로지 땅으로 가고 있다. 자연의 생성과 소멸의 원칙을 보여고 있는 것이다. 하늘과 땅을 오고 가는 여정 속에 사랑과 눈물 그리고 상처를 다 보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늦가을 한두 잎 남겨 두고 붉은 마음을 달아 놓았다는 것이 11월의 정취다. 백당나무는 인동과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이다. 다 자라야 3미터 높이다. 부채춤을 추는 것처럼 흰 꽃이 여러 개 모여 둥글게 꽃차례를 만든다. 이 꽃들을 자세히 보면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꽃 안쪽에 있는 꽃들은 유성화이고 바깥쪽의 꽃잎은 조금 크면서 무성화다. 유성화는 꽃잎이 발달하지 않아 아주 작은 술잔 같다. 그러나 이것이 진짜 꽃이다.

그 둘레로 무성화가 둥글게 달려 화려하게 핀다. 씨앗을 남기지 못하지만 벌레들을 유인해 안쪽에 진짜 꽃들에게 수정하게 한다. 마치 6월에 핀 산수국과 비슷한 모양과 방법으로 살아간다. 산수국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백당화도 유성화를 없애고 화려하게 무성화 된 꽃으로 만든다. 이것을 불두화라 하는데 꽃은 화려하게 볼 수 있겠지만 열매를 맺지 않는다. 수수하게 자란 야생화를 화려하게 개량한다. 마치 오늘의 세태처럼 꽃의 모양과 색깔도 변해가고 있다.

지난 5월의 숲에서 뜬금없이 만난 얼굴이 11월에는 언제나 잊지 못한 영원한 만남 같다. 하늘을 향한 꽃들은 그냥 나에게 왔다. 순간 마주 대하는 눈빛은 세상 큰 테두리가 만들어준 필연적인 만남인 줄 모른다. 그러나 늦가을의 만남은 열정 없이는 만날 수 없다.

나뭇잎 한 두 잎 달고 찬 서리가 내린다. 계절의 쓸쓸함이 더욱 깊이가 있다. 마음이 뜨거운 만큼 그 쓸쓸함도 깊다. 역시 백당나무 열매도 수많은 꽃잎만큼 붉은 열정을 쏟아놓고 있다.
꽃잎 하나하나 순간순간 기쁨이다.
수많은 열매도 붉은 마음이다.
오롯한 붉은 마음을 삭이려 하니 더욱 쓸쓸함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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