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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

[에세이-모도에서] 박소현(청산 모도진료소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11.16 10:16
  • 수정 2018.12.1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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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
 
휘이휘이 칼바람이 날리던 밤
눈가를 타고 흐르던 물방울도
지우지 않고
뿌옇기만 한 눈으로 잠이 들었다.
 
내 너를 오랫동안 그려 왔노라.
두려움과 함께 밀려오는 굵직한
너의 음성에
나는 차마 눈도 뜨지 못하고
내 얼굴을 쓰다듬는 너의 손길에
단발머리와 어깨사이 드러난
나의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다댄 너의 따스함에
다시금 눈이 감긴다.
 
언젠가 본 듯하더이다. 내 꿈에서 당신을
본 듯하더이다.
꿈을 꿈이라 할 수 없고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알쏭달쏭함에
너도 나도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고 다시금
눈이 감긴다.
 
이른 아침 깨어나 마당으로 나가보니, 차마 다 덮지 못한 눈발 사이로
홀연히 남겨진 오간 발자욱만 찍혀 있누나. 

얼마 전 쌍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 편을 보게 되었다. 이미 후편이 나온 지 오래지만 섬에 사는 나는 이제야 본다.

누구나 죽게 되면 종교와 관계없이 천국과 지옥이 되었건 저승이 되었건 이곳과는 별개인 곳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주인공이 아무리 귀인이라 할지라도 여러 개의 관문을 통과하며 심판을 받는 일은 꽤나 고되고 험난해보였다. 그 험난하고 고된 여정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꾸어준 저승사자들의 약속은 과정을 무사히 마치면 남겨진 가족의 꿈에 나타나 못다한 말도 하고 보고 올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었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난다.

돌아가시고 나서 몇 번이나 내 꿈에 보이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때로 엄마와 다투면 조언을 하시기도 하고 내가 바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꾸짖는 표정으로 나타나기도 하시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적엔 장례식장에 오기도 하셔서 슬픈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셨다.
물론 다 꿈에서 이야기다.

낙엽은 떨어지고 이제 겨울이 시작되었다. 요즘 부쩍 문자 메세지에 부고 소식이 많다. 추워진 날씨에 험난한 길 어찌 가실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눈발 사이의 발자국...
언젠가 어린 시절 제사 때 어르신들이 불을 꺼두고 조용히 속으로 기도하고 나중에 불을 켜면 하얀 쌀밥위로 새 발자국이 찍혀있기도 하다는 말씀을 들어서인지, 저런 표현을 쓰게 된 것 같다.

가고 나서 후회하면 소용없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도...
날이 추워지는 만큼 내 주변인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나누는 연말의 마무리가 되기를...

박소현(청산 모도보건진료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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