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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듯이 하나의 시간

[완도의 자생식물] 71. 마삭줄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11.09 10:51
  • 수정 2018.11.2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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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깨끗한 별이 겨울나무에 달아서 어머니 새벽기도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느님은 말하네. 침묵의 나무들이 지난 푸른 시절을 땅으로 내린다. 갈 길 바쁜 이에게 안으로 집중하라 한다. 겨울나무는 거칠한 바람을 맑게 만들어 밤하늘의 별들을 수없이 뚜렷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련한 추억의 산길을 낙엽으로 쌓이게 하여 포근한 세월을 기억나게 한다. 묵묵히 흐르는 강물은 나를 두고 떠나는 먼 길이 그리 섭섭하진 않는 듯하다. 산길을 가다 보면 오늘도 길동무 하나 새롭게 만난다. 나무에서, 산돌에서 정겹게 겨울 햇빛을 나누는 마삭줄이 먼저 눈길을 준다. 남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덩굴성 식물인 마삭줄은 마삭나무라고도 한다.

잎은 사계절 푸르러서 5, 6월에 핀 꽃은 5개의 흰색 꽃잎이 바람개비 모양으로 달린다. 가을에 달리는 열매는 팥의 모양으로 생겼다. 길이는 10~20cm 정도로 두 개씩 마주 달린다. 익으면 벌어져서 민들레처럼 홀 종자로 바람에 날아가게 되어 있다. 시골 돌담에서 인동초꽃처럼 시간이 지나면 노란색으로 변하며 은은한 향기는 봄 마중하기에 좋은 꽃이다.

가을날에는 붉게 물든 잎사귀는 썩은 통나무와 잘 어울림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듯이 하나의 시간임을 보여준다. 낙목한천[落木寒天],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이 춥고 쓸쓸한 풍경에서 소나무 가지 흔들어 만든 서정적 산길이 삭막하지 않은 것은 이따금 보이는 푸른 마삭줄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나뭇가지를 타고 오르는 세월이 그리 짧지는 않은 듯 땅속에서 처음 시작했던 씨앗들이 아득하기만 하다. 웃고 우는 날들이 바위에 생명을 만들고 무뚝뚝한 산돌도 가느다란 바람에도 눈물 짓게 한다.

이 겨울에 신록의 계절에 젖어서 무엇인가 푸르름을 찾다 보면 마삭나무는 꼭 보게 되는데 외나무에 느린 햇빛으로 한 줄로 오르는 연약함이 외롭고 쓸쓸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가. 한편 나무와 바위에 기대어 서로 따듯한 길이 되기도 한다.

세상 보기에는 보잘것 없지만은 이들은 하나의 숙명이 되어 먼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산속에 돌과 나무는 어느 것이나 아름답다. 살아 있는 나무는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쇠붙이로 문명을 만든 인간은 영원히 빛날 수가 없다. 그 단단한 강철도 풀 속에 1년만 있어도 녹슬고 만다. 지나간 시간을 대지는 새로운 생명을 움트게 한다. 신비의 대지에서 늦가을 햇빛과 마삭줄은 향기롭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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