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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선향, 찻잔 속에 피어나네!

[무릉다원, 은선동의 茶 文化 산책(40)]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김덕찬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11.09 10:18
  • 수정 2018.11.2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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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청해진다원 김덕찬 교무

가을날의 이른 새벽, 특히 음력 초하루 전후의 새벽하늘은 미리내의 빛물결이 넘실거리다 못해 이곳 신선마을 까지 쏟아져 내린다.

그 기운이 얼마나 맑고 강한지 그 쇄락함을 가득 안고 좌복에 앉으면, 맑은 은선의 향속에 깊이 쉴 수 있다. 그리고 찻자리에 앉으면 선의 향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때 찻물 끓는 소리는 파동 없는 심신의 고요 위에 툭 던져지는 물의 또 다른 진동이다.
찻물 소리. 옛 선인들께선 이 물 끓는 소리만 들어도 물의 상태를 알았다고 한다.

즉 물이 끓는 상태를 소리, 형태, 증기 세 가지로 구분하였고, 이를 다시 각각 5단계로 구분하였던 것이다(성변오소변). 처음 쏴아~ 하며 열이 물에 전달되어 물이 반응하는 첫소리가 그것이며, 그 반응 정도의 소리가 선명해지며 나타나는 점점 구슬 구르는 듯한 소리, 보글보글 진동을 일으키는 소리, 마치 말달리듯 파도치듯 격하고 역동적인 소리, 그리고 이 소리가 지나고 나면 희한하게도 소리가 멋은 듯 고요해 진다.

이와 같이 다 끓어 순수가 되도록 까지 눈을 감고 고요히 물의 소리와 하나되어 몰입하다 보면, 물이 갖는 에너지의 기감이 내안에 가득 들어옴을 느낄 수 있다. 요동치듯 내품는 물의 에너지가 정화 되어 순수에 이르면 다시금 깊은 고요의 선미를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이른 아침 맑고 조촐한 선미를 느끼는 경험은 스스로의 내면적 자아 발견과 서로가 이미 하나임을 알아차리는 회통의 나눔으로 발전되고, 나아가 존재적 근본 자아의 일깨움은 기쁜 법열감이 북받쳐 오르는 감동으로 다시금 깨어난다.

물은 단순히 물일뿐인데, 그 물에 우주적 묘리가 가득 담겨져 있다. 물은 그 어떤 형태로 규정하여 정의하기 어렵다.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속성과 차면 넘친다는 특성, 모양도 환경 적응에 최적화되는 특징도 갖고 있다. 스스로의 성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그래서 옛 선지식이 상선약수를 말씀하셨을까?

물! 특히 차에 있어서는 차의 신령한 정기를 드러나게 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즉 차와 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또한 불과도 상극인 듯 하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상생상화의 필연적인 조화로움을 이루는 극치의 절묘함을 이루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찻잔속의 맑고 향기로움이다. 차가 갖는 강한 자연의 성정을 절제된 불다룸으로 조절하여 음용의 차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차는 물과 불의 강약과 많고 적음, 길고 짧음, 이를 지키는 차인의 중정에 맞는 마음의 묘법으로 한잔의 차가 세상에 나오니, 그 맛과 향은 천하의 일품으로 언설로 품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이러한 자연의 묘리가 온통 갊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차 한 잔을 마신다는 것은 이와같이 자연을 마시는 것과 같다.

차 한 잔에 자연과 합일하는 묘경이 선미와 둘 아니니 그 향을 뉘라서 어떠하다 하겠는가.
그저 음미할 뿐! 신선마을에 깊어가는 가을의 향이 찻 잔 속에 녹아들어 온 누리에 가득 피어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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