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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추억, 돌아갈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그립다

[에세이-詩를 말하다] 김인석 / 시인. 약산 넙고리 출신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11.02 13:10
  • 수정 2018.11.2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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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에 쓸 고구마 캐러 갔더니
몇 송이 고구마 꽃
장난감 같은 영분홍 나발 속에
이슬 가득 고여 있다.
밤새도록 놀다 간 별님 달님
착한 그 영혼이 꽃에게 준 선물 같다
천상에서 길어온
생명의 샘물
나도 저 물 한 모금 마시면
궁핍한 시간의 괴로움들 씻어낼 수 있을까.
슬픔의 검은 기억들 정화시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한참을 들여다보는데
어느 순간인가 내 눈 속에서
찰랑찰랑 물소리 들리는 것 같기도 하여
귀 기울일 때
아 우주가 온통 환해지는 것이었다.
막 펴지기 시작한 햇살의 온기며 미풍도
자그마한 그 꽃 나발에 가장 먼저 와서
인사하고 노래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 배한봉, <고구마 꽃> 전문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 추억을 많이 소유한 자와 적게 소유한 자의 삶의 질은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유년시절 혹은 힘들게 이겨낸 삶 속에도 아름다운 추억은 있을 것이다. 때때로 삶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 가끔씩 아득하게 담겨져 있는 추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그 시절로 돌아가 그리운 날들을 잠시나마 만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사람살이 복잡하게 생각하면 한정 없이 힘들고 복잡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삶 또한 작은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삶이란 참으로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인생 자체가 힘든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렇듯 관점의 차이가 불러오는 결과는 아주 다르다. 기왕 주어진 삶이라면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는 삶을 살아야 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추억을 유용하게 활용해야 될 필요가 있다.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잊지 못할 추억들이 있다면, 그 추억들을 되새김질해 보는 것도 삶 위에 윤기를 덧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주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고구마를 캐러 다닌 적이 있다. 추석 전후로도 고구마를 캐러 가곤 했다. 초록을 문 고구마 순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에서 기분이 묘했다. 왜 저 넓은 이파리들은 두둑마다 무리를 지어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추석에 쓸 고구마 캐러 갔더니/몇 송이 고구마 꽃/장난감 같은 영분홍 나발 속에/이슬 가득 고여 있다.” 고구마순이 하늘로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은 이슬을 받아먹고 싶어서이다. 이슬을 먹지 않으면 고구마의 오묘한 맛을 낼 수 없다. 반드시 이슬을 먹고 난 후라야 고구마로써 제 맛을 낸다.    

가끔 친구들은 고구마 순에다 짝사랑하는 이름을 댓까지로 무작정 적어놓고 친구들과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그 이름을 3번 부르기를 하고 그 소녀에게 빵 사주기 내기를 걸고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어쩌다가 추억이란 녀석에 이끌리어 유년을 회상에 보면 참으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그립다. 고구마순 이야기만 들어도 마음이 설렌데 시로 접하니 마음 찡하다.    

김인석 / 시인. 약산 넙고리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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