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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쌓으며

[완도 시론] 정택진 소설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10.19 11:15
  • 수정 2018.10.2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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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지만, 담을 쌓는 것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성천난 것을 보수하는 것이든, 새로 축대를 쌓는 것이든, 혹은 새로 건물을 짓는 것이든, 담을 쌓는 일은 이제까지는 없던 어떤 것을 꾸며내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창조성’이 예술의 본질 중의 하나라면 담을 쌓는 일도 예술적 요소를 갖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돌을 재료로 하는 그 예술행위를 하다보면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된다. 우선, 밑그림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어느 발로 담을 쌓고, 어느 높이까지 올리고, 그래서 돌은 얼마나 필요할 것인지를 계산해야 한다. 쌓아가는 과정에서 바뀔 수도 있겠지만 그 틀 안에서 일은 진행될 것이다.

쌓기가 시작되면 재료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큰 돌과 작은 돌, 모난 것과 둥근 것, 괼 것과 쌓을 것, 돌들은 생김새와 크기에 따라 그 쓰임새가 달라진다. 큰 돌은 아래에 작은 돌은 위쪽에, 둥근 자갈은 안쪽에 각이 난 자갈은 돌 사이에 들어간다. 면이 있는 것은 밖으로 향해져 담의 무늬를 만들 것이며, 둥근 돌들은 안쪽에 넣어져 단단하게 담을 다질 것이다. 남작한 돌은 담을 쌓는 데 그리 좋은 것이 아니어서 마지막에 담의 머리에 얹혀질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돌들은 모양대로 크기대로 다 저저금의 역할을 한다.

담을 쌓다보면 정성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돌을 놓는 것은 정성을 들이는 일이며, 정성이 스몄을 때 담은 제대로의 모양을 갖추게 된다. 설사 투덕투덕 쌓는 막담일지라도, 어쨌든 돌은 하나 위에 하나가 얹히는 것이고, 그 위에 또다른 하나를 얹는 일이니, 모든 돌에는 손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돌은 쌓는 일은 살아가는 것과 닮아 있다. 날과 날을 잘 쌓아야 좋은 한 무새가 되고, 그 무새가 모아져 한 달이 되고, 그것이 모여 한 해가 되고, 그것이 결국 하나의 인생을 이루는 것 아니겠는가. 하여 담은 우리 삶을 비유할 수 있는 것으로도 매우 적절하다.

담을 쌓다보면 돌아보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한 뼘을 쌓고는 두어 발짝 물러나서, 돌들이 잘 물려졌는지, 담이 기울지는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담에 틈이 졌으면 샛돌을 넣어야 하고, 돌이 삐딱하면 바르게 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중간에 담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담을 쌓다보면 세상의 모든 것에는 그것에 적합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홑담을 쌓을 곳과 겹담을 쌓을 곳, 죽담을 쌓을 곳이 다 따로인 것이다. 축대는 홑담으로 쌓을 것이고, 집 울타리는 겹담으로 쌓을 것이며, 집의 벽은 죽담으로 올릴 것이다. 홑담을 쌓을 곳에 겹담을 쌓을 수 없고, 지붕 밑에 홑담을 댈 수는 없다. 목적과 용도에 따라 담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다.

담을 다 쌓고 바라보면, 어떤 돌은 쉽게 놓았고, 어떤 돌은 애를 썼는지 알 수 있다. 어떤 돌은 제대로 맞아졌고, 어떤 돌은 어그러졌는지도 눈에 보인다. 그렇지만 각자였던 것들이 모여 이루는 전체의 무늬에서 쌓은 자는 새삼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을 내가 했구나, 그래도 내 손이 아직은 쓸 만하구나, 다음 참에는 더 잘 쌓아야지, 하면서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이다.

사실 내가 방점을 찍고 싶은 것은 두 번째 것이었다. 둥글둥글해서 담을 쌓는 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듯해 보여도, 그래도 그것도 분명히 어딘가에 소용이 닿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것처럼 우리 모두는 다 저저금의 가치를 지닌 존재라고, 그러니 우리 모두는 다들 소중한 존재라는 말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게 아닌 듯싶다. 인간에게는 그것이 적용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소위 ‘인간말종’으로 불리는 종자들이 있지 않는가. 모든 사람에게 욕을 먹고, 모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그런 부류들 말이다. ‘인간’이라 하는 게 외려 개를 욕 먹이는 그런 종류의 인간들까지 어떤 쓸모가 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담독도 못 되고, 굄돌도 못 되고, 그렇다고 샛돌도 못 되는, 어디에 들어가든 담을 훼방 놓고, 그래서 끝내 담을 허물어뜨리는 그런 인간들에게까지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다. 설혹 내가 그런 종류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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