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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가는 늦은 연민의 시절

[독자 시] 김영체 독자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10.05 10:58
  • 수정 2018.10.2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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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저녁 노을이 스며드는 철로변
어느 시골 스산한 한 기차역에
희게 센 두 남녀 노인이 아직은 모른 체
역전에 다가와 마주쳐 놀랍니다.
잠시 머뭇거리다 누가 먼저 없이
서로 내민 손
어린 날 그때처럼 자연스레 몸을 기댑니다.

그러는 동안 기차는 역에 이르고
여객들이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다정한 부부의 모습으로 이끌어 따르며 차에 오릅니다.
- 기자의 눈은 섬세하고 카메라 렌즈는 정확하지요.
- 이 아름다운 모습을 놓칠 리가 없어요.

창가에 난 자리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회상에 잠겼다가 놀라 꿈을 깬 듯
슬쩍슬쩍 두 맑은 그리움이 가득한
눈빛이 슬프고 애잔하여 사랑스럽습니다.
작은 할머니가 할아버지
큰 품으로 안길 듯
다가가 올려다 본 입술이
닿을 듯 했지만 거기 까지 만입니다.
말없이 미소를 꿀꺽 삼키고
창문 너머를 봅니다.

기차는 달리고 달려서
강위 철교를 건너고 비탈진
산모퉁이 돌고
갈대 무성한 추수가 끝난
들녘도 지납니다.
무릎에 포갠 두 손을 놓고 다시 무한한 영원으로 떠나는 이별
다음역에 기차가 멈춥니다.

오랜 이별 50여년을 기다려온
침묵의 우연
그때도 저렇게 이제는
등이 조금 굽은 큰키
성큼성큼 떠났습니다.
멀어져가는 모습을
찬 유리창에 볼을 기댄
할머니 눈을 감아버립니다.

“놔 줄 수 없겠나?”
하는 아버지
“안됩니다”를 기대했지만
“그러지요” 하고
오늘처럼 성큼 성큼 떠났습니다.
그렇게 50여년을 늙어 더는
우연을 기대 할 수 없을테지요.

할아버지는 노란 지폐 속에
각자가 적은 주소를 끼어 넣고
할머니도 받으란 듯 미소 띈 눈을
꿈벅이며 1만원 한 장을 주었습니다.

어서 보내줘야지
이런 사진을 받아본 온 가족
아들 딸 며느리 사위 그리고 손주들
뜻밖의 사진에 놀라겠지만
이윽고 손뼉치며 얼마나 즐거워할까
 
분명 화목한 즐거움이 가득한 저녁시간
어서 보내줘야지
모두가 공유하는 평화로움
이해와 화해 용서와 자애로움이 넘치는 가정이 되길 빕니다.

하늘에는 회색 빛 붉은 노을이
사라지고
역사는 언제나처럼 무심하게
어둠속으로 묻혔습니다.
바로 시컴해진 밤 하늘 가득
넘칠듯한 별들이 빛나기 시작하고
멀리서 기적이 이 밤의 긴꼬리를 끌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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