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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냐?"

[완도 시론] 정병호 /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9.24 18:21
  • 수정 2018.09.2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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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 /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달포 전쯤 필자가 봉직하고 있는 학교 식당에서 우연히 물리학과 교수와 자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대뜸 요즘 법원의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못지않은 사태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 교수는 이게 나라냐고 반문했다. 필자는 법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무척 부끄럽다고 했다. 그 교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법을 모르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 그럴 것이라 믿는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수사가 벽에 부딪혔다. 구속영장, 압수수색영장을 열에 아홉 꼴로 법원이 연거푸 기각했다. 그러는 사이 재판거래 혐의를 받고 있는 전·현직 법관들은 핸드폰 등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죄다 파기했다. 보통 사건의 영장기각율은 1%라고 한다. 영장담당 판사가 증거인멸을 방조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전관예우는 전관이 변호사일 때만이 아니라 피의자일 때도 적용되는가 보다. 전관예우도 진화한다.

작금의 사태를 보노라니, 재판거래를 엄벌한 옛날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의 왕 캄비세스 2세가 생각난다. 기원전 6세기 판사 시삼네스가 뇌물을 받고 편파적인 판결을 했다. 왕은 그를 즉각 체포하여 산채로 피부를 벗기는 형벌을 집행했다.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이 형벌은 동양의 능지처참(陵遲處斬: 언덕을 천천히 오르내리듯 오랫동안 그리고 최고로 고통을 느끼도록 살점을 포를 뜨듯 조금씩 베어내는 사형)에 비견할 만하다. 많은 이들이 이 광경을 지켜봤음은 물론이다. 나아가 왕은 재판거래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판사 시삼네스한테 벗겨낸 가죽을 그가 앉던 의자에 깔게 했다. 놀라운 것은 왕이 시삼네스 아들 오타네스를 새 판관으로 임명했다는 사실이다. 고대 이란의 왕에게 재판의 공정성이 어떤 의미였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15세기 말 벨기에 브리헤 시의회는 화가 제라르 다비드에게 이 일화를 담은 그림을 주문했고, 완성된 그림을 시의회 상원 집무실에 걸었다고 한다. 시삼네스의 재판을 귀감으로 삼아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공직자들이 청렴함, 공정함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법법
버원이 지금껏 보여준 태도로 보건대,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재판을 현재의 법원에 맡길 수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시대적 요구를 감당할 만한 깜이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특별재판부를 도입해서 사법농단 사건을 엄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은 사법불신은 극에 달할 것이다. 법원도 패거리 의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더 큰 홍역을 치르게 될 것이다. 법원의 방어적인 태도에서 법원이 자멸하는 모습을 본다. 이러다가는 영미처럼 일반 시민이 유·무죄를 판단하는 배심원 제도를 도입하라는 요구에 직면하게 될 지도 모른다.

국민의 요구는 간단하다. 남의 죄를 심판하는 자리에 있는 자도 죄가 있으면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심판을 받으라는 것이다. 헌법상 규정된 ‘법 앞의 평등’에 따른 당연한 요구다. 지금 사법농단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이들이 자신들은 법 앞에서 열외라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면,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법률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법왜곡죄를 하루빨리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독일 형법 제339조는 “판사, 판사 이외의 공무원 또는 중재재판관이 법률사건을 주재하거나 결정하면서 법을 왜곡해 일방 당사자를 유리 또는 불리하게 한 때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덴마크 형법 제146조는 나아가 만약 부당한 판결로 피해자가 경제상 존립을 위협받는 결과가 야기됐다면 3년 이상 16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모범형법안(MPC) 제243.1조도 검사의 부당한 수사나 법관의 부당한 판결과 같은 법왜곡행위를 엄벌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형법에 법왜곡죄를 두는 것만으로도 판사 등 사법기관 종사자들에게 큰 경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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