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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평은 왜? 천해 고도 신지도를 찾아왔나[창간 특집 1] '미인도'를 그린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이 원교 이광사의 초상화를 그린 이유
김형진 기자 | 승인 2018.09.24 17:27
모나리자.
클레오파트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 하나가 번개처럼 온몸을 가로지르는 순간 여인의 그림자는 울고 있었다. 그러나,  아니! 그것은 화가의 울음이기도 했고 궁극에 이른 아름다움이기도 했으며美 미(美)의 탄생이기도 했다.
저 신비한 미소가 잠들지 않는 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열정은 영원히 식지 않을 것이란 다빈치의 모나리자?
아님, 개울가에서 손수건을 씻는 그녀를 보자 물고기가 헤엄치는 걸 잊고 물속으로 가라앉았다는 월나라의 서시?
그도 아니면,  파스칼이 극찬했던 숨겨진 관능적인 매력으로
규칙적으로 뛰던 심장의 박동수를 단박에 제멋대로 올려놔버린 욕망의 화신 클레오파트라?
일단, 클레오나 서시는 파멸의 상징들이라 진정한 미인에선 소거되겠다. 붉은입술에 부드러운 콧날, 촉촉한 눈동자와 가느다란 속눈썹 관자놀이를 향해 서서히 사라지는 옅은 눈썹, 그녀의 맥박까지 들리는 듯하다.
모나리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 안개에 쌓인 듯, 연기 속으로 사라져 가듯, 내 안으로 부드럽게 번져오는 미소와 풍경... 여인의 미덕과 겸손, 원숙의 미(美)란 이런 것이다. 미의 정수를 보여주는 귀부인의 품위는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에러(Error). 24살의 모나리자를 절정의 기량에 오른 쉰이 넘은 화가가 본질에서 빗겨나 자기 자신을 그렸다는 비평. 결국 일체에서 벗어나 버린 이율배반적인 느낌은 그 때문이었다.
통찰의 프로이트는 그것을 꿰뚫어 보았고 이어지는 혹평.
"쥐를 포식한 고양이와 같은 만족스런 미소일 뿐이다."
그녀를 통해 자신의 천재성만을 증명해 버린 이기성을 꼬집는 말이었다.
그러면, 세상에 모나리자 보다 더 우월한 미인이 있나?
응! 다행히도.
우선, 미인하면 눈 코 입을 떠올리겠지만 제일의 조건은 바로 목선. 가장 아름다운 지젤라인은 목선에서 시작된다.
조화와 균형의 미(美)의 시작이면서 전체의 미(美)가 완성되는!  왜? 라틴댄스의 시선이 목선에 가 닿아야 하는지를!
 

미인도.

혜원은 여인의 굴곡을 꼭 맞는 저고리와 풍성한 옥색치마에 감추고 우아한 목덜미를 통해 전신상의 미(美)를 완성시켰다.
그런 후, 빈방에 내리 꽂히는 햇살 같은 눈썹... 금방 목욕을 끝마친 채 풀잎에 매달린 이슬같은 눈동자... 고요한 내 마음에 내려앉는 달빛 같은 콧날... 뜨거운 뙤약볕 아래 불어오는 한 줄기 소슬바람 같은 입술까지. 보는 순간, 고독보다 그윽해지고 죽음보다 고요해지는 건. 이런 걸 두고 십점 만점에 십점.
퍼펰! 그레잇!
그런데, 왜 미인인가?
누군가는 옅은 보라색 수마노 노리개를 살짝 받쳐 들고, 다른 손으로는 진한 자주색 옷고름을 풀기 직전.
남성의 애간장을 녹일 포즈라. 
 흥! 너무 자의적이야.
여성평론가들조차 옷을 벗고 있다가 대세적인데 그렇담, 그건 너무 남성 우월적이고 종속적이면서 억압적이지. 한 편의 정점으론 인정되지만 하나의 완성으론 부족해. 물론 여인의 옷고름이란 사랑의 상징으로써 미인도 또한 사랑의 순간이긴 하지만....
여기선 미인을 논하려면 여인이 어느 때, 가장 아름다운가의 눈이 필요해.
 아하! 그렇담, 동서고금 이구동성으로 “사랑을 받을 때!”
맞아쓰!
첫 정(情) 장면. 머리를 올렸다.
여인으로 탄생되는 순간.
혜원 또한 아직 소녀를 미인이라 그리고 싶진 않았을 거니까!
기구한 운명에 기생이 되어 가채를 올리는 순간! 사랑하는 정인에게 첫 정을 받았다.
사랑을 받았지만, 소녀성을 잃은 슬픔! 환희와 비애가 3대 7로 교직하는 순간... 역순이었던 게지, 가채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풀었던 옷고름을 다시 매는 순간을 포착했지!
왼쪽 발은 선배들의 충고를 따른 듯하다. 정을 줄지언정 려인의 절개만은 잃지말라!는.
대상의 모든 감정까지 완벽하게 읽어내며 일체(一體)한 화공과 미인...  흠의 결조차 없다.
 
화가의 가슴에 만 가지 봄기운이 일어나니, 붓끝은 나비가 되어 만물의 미인을 그려 냈네
 
혜원(蕙園)의 호처럼, 아름다운 정원에 묘하고도 신비로운 한 떨기 난초가!  그대처럼, 그대처럼 피어났도다!
그리고 또 하나의 그림.
 

미인도를 그린 혜원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이 그린 원교 이광사 초상화.

원교이광사초상도(본문 사진).
이 그림은 신지도에 유배 온 원교 이광사를 그린 초상화로써, 신한평이 그렸다.
신한평이 누구던가!
김홍도와 함께 정조의 어진을 그린 이로 왕의 얼굴을 3차례나 그린 당대 최고의 화가가 아닌가! 더 알기 쉽게는 조선 최고의 미인을 그린 신윤복의 친부(親父)다. 아버지는 최고의 선비를, 아들은 최고의 미인을 마치 우연의 일치처럼, 아님 아버지가 최고의 선비를 찾아내 자신의 화풍을 완성시켰듯 아들 또한 화가로서의 길을 완성시키기 위해 미인을 그려낸 운명적 필연은 아니었을까? 유배생활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원교 이광사.
그의 유명한 글씨. 
대웅보전(大雄寶殿).
글씨는 잘 쓰인 글씨다.
"뉘 글씨요?"  "원교의 글씨요"
김정희가 물었고, 초의가 답했다. 김정희가 누구던가! 70평생 벼루 10개의 밑창이 뚫도록 먹을 갈고 1천자루의 붓이 닳도록 글씨를 쓴 조선 최고의 천재다.
초의는 또 누구던가! 다도(茶道)를 정립한 한국 차의 성인이 아니던가.
추사는 초의에게 적잖이 빈정이 상했다.
어릴 때부터 사대부라는 양반가의 계급장도 떼어낸 채, 노비나 백정과 다름없는 팔천으로 천시 받던 시골 골창의 중에게 스스럼없이 교우해주며 배려 아닌 배려를 해왔는데, 그 은덕은 모르고 감히 원교의 글씨를 걸어놔! 배알이 딱 꼬였다.
영조 때 최고 명필로써 양명학의 대가로 칭송되던 원교 이광사. 서예의 이론과 역사를 '필결'이란 책에 담아내 세간의 추앙을 받았을 때도 추사만은 말도 안되는 논리라고 깔아 뭉게줬다.
“조선 서예가들의 글씨를 보면 마치 썩은 쥐가 봉황새를 으르려고 하는 것이 정말로 가소롭지 않는가 말야!”
자신이 한껏 깔아 뭉긴 원교의 그림을 해남 대흥사 현판으로 자신을 보라는 듯 딱 걸어 놔!
당장에 “떼어 내”일갈하면서, 붓을 들어 일필휘지 '무량수각(無量壽閣)' 넉자를 써, 이것을 내걸라고 했다.
그리고 오랜시간이 흘러 제주에서 해배 된 이후, 다시 찾은 대흥사에서 추사는 자유분방한 필치에 선비의 기품과 평온함을 내재시킨 원교의 대웅보전과 자신의 오만과 독선의 기름기가 좔좔넘쳐 흐르는 무량수각의 글씨를 보게 되었다. 이어 초의에게 나지막이 건네는 말. “원교의 대웅보전을 다시 내거시오”
그건 단순한 글씨의 우위만이 아니었고, 학문의 깊이나 지혜의 우위 또한 아니었다.
다만 알고나면 반드시 행하는 지(知), 즉 덕(德)과 하나로 합일한 지(知)였다.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 이른바 ‘앎’이란 진정한 앎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했던 “행동하는 양심”이었고,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닌 “옳고 그름, 내가 올바르게 사느냐 잘못 사느냐, 그것이 문제”인 양명학의 요체인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시기하던 자들에 의해 신을 모독하고 청년을 타락시켰단 죄명으로 사형에 처해졌을 때 죽음을 피하지 않고 “악법도 법”이라는 실정법을 따른 건, 사람의 본질은 정신에 있고, 그 정신은 앎의 주체이며, 그 앎은 그 사람의 행위로 이어져 결국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한다는 심오한 철학적 연장선상에서 이해되는 지행합일의 덕목 때문이었다.
추사는 이광사가 실현했던 지행합일, 곧 23년간 고독한 유배생활 중에서도 중국 법첩의 범주를 벗어나고자 하는 민족적 자각적 예술 운동을 동국진체라는 민족의 독특한 서체를 완성시켜, 이를 활발하게 전개했다는 점.
그 험한 유배생활 속에서도 지행합일을 이룬 아름다운 순간들.
추사가 인정한 건 그것이었고, 신윤복의 아빠 신한평 또한 그것을 보았던 것이며, 이광사를 조선 최고의 군자이자 선비로써 인정하는 의미에서 천해의 고도 신지도까지 찾아 온 것이었다.
70세의 노인인데도 꼿꼿한 지조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두려워 않는 강인한 기개, 옳은 일을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하던 불요불굴의 정신력, 항상 깨어 있는 청정한 마음가짐까지.
그런데 왠지, 군자의 얼굴이 슬퍼 보인다. 그건 과거, 옥살이를 할 때 옥중에서 남편이 죽었다는 소문이 아내에게 들려올 당시 아내는 남편을 먼저 보낼 수 없으니 자신이 먼저 죽기를 각오하면서 "부모님이 주신 몸을 차마 칼로 해칠 수 없어 남자는 이레동안 먹지 않으면 죽고, 여자는 여드레 동안 굶으면 죽는다니" 곡기를 끊어 자결하였다.
그렇게 자신의 손으로 장례도 치러주지 못한 채 아내를 보낸 이광사. 옥사에서 풀려난 이후 평생토록 아내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지라도 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원교의 애절한 그리움까지 담아낸 신한평.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우아한 필묘와 은근한 요철감을 표현하는 수법으로 강렬하진 않지만 품격 있고 깊은 전신을 유려하게 성취해 내면서 그 또한 화가로서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신지도에서.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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