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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외함마이 할라고 저라까?

[에세이-모도에서] 박소현 / 청산모도보건진료소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9.02 21:04
  • 수정 2018.09.02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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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 청산모도 보건진료소장

 “미끄러우요. 조심히 내려오시오 소장님.”
오늘은 불근도라는 섬에 주민분들이 미역채취 하러 가시는 길에 따라나섰다. 4월부터 6월까지 물때가 좋은 날이면 모도에서는 바다가 잘 길러내주는 돌미역을 따러간다.

미끄러운 갯바위에 미역을 가득 담은 자루들을 옮기시다 미끄러지셔서 상처가 나시기도 하고 갈비뼈에 금이 나시는 경우도 있어 비상약품 몇 가지와 고둥이나 주워 볼 요량으로 검정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따라 나섰다.

사람이 살지 않아 그런가 물이 꽤 빠지니 굵직한 삿갓조개와 고둥들, 바위틈에 전복과 소라까지 진료소를 옮겨오고 싶은 바람이 들 정도다. 빳빳하게 자란 톳 무더기를 쓸어보니 보라색 물을 뿜어대는 굴멩이란 녀석이 물컹 잡힌다. 고둥과 소라 군소 몇 마리 비닐에 담아 다친 분 없이 마을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다 그 사이 배에 한 가득 미역을 싣고 무사히 돌아왔다.

진료소 일을 처리하고 밖을 나와보니 아까 따온 미역들을 건조시키기 위해 이장님과 우편취급국장님 등 남자 어르신들은 미역귀 아래 뿌리를 다듬고 엄마들은 그것들을 가지런히 줄 맞추어 틀을 잡아 건조시킬 모양을 만든다. 출장소장님과 목사님은 틀이 완성되면 옮기는 일을 하시고, 바다에서 작업하고 와서 또 쭈그려 일하시는 모습에 머릿수대로 커피타서 쟁반에 들고가니 되려 한 것도 없는 내게 빵이며 과자를 내주시며 고생했다 하신다.

미역귀를 한 주먹 씩 모아서 엄마들 손에 건네드리면 한결 작업속도가 빨라진다. 콧물이 줄줄 나기 시작하며 오한이 든다는 엄마를 보고 진료소로 얼른 달려가 약 짓고 털모자 가져와 씌워드리니 다른 엄마들이 “지그 외함마이 할라고 저라까 어짜까?” 하시며 농을 건네신다.

그렇게 밤 9시가 넘은 시각 한 무더기 남은 미역을 “두 소장님들 가꼬가서 국도 끓이고 말려서 나눠 잡수시요. 돌미역이라 끓여도 끓여도 코같이 안되고 우리 모도 미역 잡수믄 인자 딴데 미역 못잡숴.” 그렇게 건네시고는 집으로 돌아가신다.

시작은 이제부터다. 출장소장님과 우편취급국장님 미역옮기는 배 선장님 이렇게 아까 잡아 온 군소며 소라를 삶아 초장에 소주 한 잔 하며 피로를 날려 보낸다. 이번에도 한 것도 없는 나는 옆에 앉아 “ 맛나다. 맛나다.” 연발하며 며칠 굶은 공룡새끼마냥 집어먹는다.

이 마을서 오래 지내신 우편취급국장님이 말씀하신다. “원래 미역작업하면 가구수대로 똑같이 나누는데, 그래도 뭔 일 있는 집 있으면 그 집 마당에 모르게 한 무더기씩 더 놓아두고 가고 그랬다요. 누가 가져다 놨냐 물어도 갈챠주도 안하고 이것이 우리 모도 인심이요, 소장님!”

과연 그럴 만한 분들이다. 석류가 열리면 주먹보다 커져 젤 먼저 벌어지는 큰 놈을 가져다 진료소 문 앞에다 두고가시고 콩 따오다 양파 뽑아오다 검정 봉지에 누구라 말도 안하고 두고 가시는 분들이니 우리 엄마 아부지들 답다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가 나온다. 내년에도 엄마아빠들 따라서 미역따러 가고, 거기서 잡아 온 검댕댕 군소에 된장 찍어 한 입 앙! 먹으며 맛나다 맛나다... 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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