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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지금도 내마음의 ‘가설무대’서 상영돼

[에세이-詩를 말하다]김인석 / 시인. 완도 약산 넙고리 출신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7.15 18:10
  • 수정 2018.07.1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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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 신경림, <농무> 전문

신경림 시인의 대표작라고 할 수 있는 위의 시에서 ‘가설무대’라는 낱말은 시대와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육칠십 년대 가설무대는 일 년에 서너 번씩 장날이나 면단위 소재지에 들어서서 공연을 하곤 했다. 가설무대가 들어서는 날이면 입소문을 통해서 벌써 마을주민들의 마음이 들떠 있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마 그 당시에는 구경거리가 마당찮던 시절이어서 사람들이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롯하게 그 시절 그 기억을 그대로 <농무>는 담고 있다.

“징이 울려 막이 내렸다”. 공연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아쉽고 막이 내린 자리는 늘 황량하다. 하나 둘 텅 빈 운동장을 거쳐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엔 쓸쓸함도 짙게 배여 있다. 자리를 떠난 구경꾼들은 술벗들과 함께 찌들고 힘든 세상이 답답하고 고달프고 원통해서 분으로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숫집으로 몰려간다. 주막집에선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며 색싯집 이야기며, 어제 저녁 철수네 부부싸움 이야기며, 온갖 사건 사고를 건져내어서 술판 위에 올려놓고 푸념도 하고, 진탕 술을 먹고 이놈의 지랄맞을 세상이라고 목청껏 허공을 향해 분한 마음을 내뱉기도 한다.

그리고 뒤를 따라 악을 쓰는 쪼무래기들과 섞여 노래도 부르기도 하며 개 같은 욕도 하고, 담벽에 붙어 낄낄대는 처녀애들의 웃음소리에 춤도 추고, 가난했어도 훈훈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목청껏 소리를 질러도 그 누구도 흉보지 않는, 스스럼없이 말을 건넬 수 있는 이웃들이 있어 좋았다. 참으로 살맛나는 세상이었다.

궁핍했지만 따뜻한 이야기가 있었고, 철없이 정 나눌 진솔한 벗들이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정담이 녹아 있는 대화가 오고가던 세상이었다. 그러나 벗들은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를 아내에게 맡겨두고 하나 둘 정든 고향을 버리고 도회지로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무일푼으로 떠났던 그들은 타향에서 터전을 잡고 아이들이며 아내며 부모님을 모셔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하다보니, 지금은 몇 년 만에 한두 번 찾아오는 타향 같은 고향이 되어버렸다. 

아마 지금은 각양각처에서 어릴 적 고향의 기억들을 더듬으며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철없이 킬킬대”며 살았던 고향이 지금도 가슴 한켠에 남아 아름다운 추억으로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김인석 / 시인. 약산 넙고리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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