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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진 산길에 피어 진실로 사랑하는 이들만

[완도의 자생 식물] 57. 부채꽃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07.12 22:54
  • 수정 2018.07.1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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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이 하눌타리가 하얗게 머리를 풀고 있고 울타리 높은 곳에선 사위질빵 꽃향기가 흰 구름 사이 푸른 하늘 가운데 짙어가고 있다. 울 밑에 봉선화 꽃물은 아직도 잊지 못한 첫사랑의 꿈들이 타오르고 있다. 산 아래 이름 없는 연못가에 빨갛게 푸른 하늘을 가장 깨끗하게 바라고 있는 부처꽃. 무념의 연못 한가운데에 물빛도 가장 고요한 마음이 보인다.

부처꽃이라면 넓죽한 모양의 미소로 다가올 것 같았는데 가늘게 하늘로 피어올라 느닷없는 소낙비에 젖는다. 울다가 웃다가 살며시 웃음 짓는 그 얼굴은 열렬한 태양 빛에 투명해진다. 부처꽃은 사랑, 슬픔, 호수 그리고 정열의 의미를 부여하는 꽃으로 물을 좋아해서 물가에 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부처꽃은 냇가나 연못 등 습지에 자라는데 길고 화사한 보랏빛 꽃을 승려들이 백중날(음력 7월 15일) 제를 올리면서 부처님께 바쳤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었다고 한다.

요즘은 새로 생기는 생태공원이나 냇가마다 보기에도 좋고 잔뿌리가 많아 물도 맑게 한다고 많이 심는다. 다른 이름으론 천굴채라고 부른다. 약효는 피부병이나 지사제로 쓰인다. 호수 가운데 연분홍 연꽃이 맑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한 번도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깊은 숲에서 부처꽃도 마음을 다해 진홍빛 얼굴을 내밀고 있다. 아무도 다가가지 않는 연못에서 맑은 하늘만 고요하게 내려앉은 진홍빛 사랑도 아픔이라는 과정이 겪었다. 연초록 세모고랭이도 그런 사연을 아는지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다. 살아 있는 것들보다 더 아름다움은 지상에 없다.

살아 있기에 삶을 가장 치열하게 슬픔을 이겨내야 하고 필연적으로 삶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물가에 붉게 물든 부처꽃은 세속에서 가장 눈물 많은 꽃으로 슬픔을 연못에 가득 담아놓고 있다. 야생화를 사랑한다고 산속을 찾아 나선 발걸음은 반듯한 산길만 택했다.

하지만 부처꽃은 저 후미진 산길에서 스스로 피어 진실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물에 젖는다고.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존재감은 텅 비어있기 마련이다.

스스로 변해가고 새로움을 찾아내려고 하는 데에는 처음에 지녔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다. 부처꽃을 보고 조금 더 산속으로 들어가면 하늘말나리가 불현듯이 다가온다. 이들은 문화도 문명도 없다.

그러나 첫 마음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이 영원한 것이다. 현재의 위치에서 혼자만이 채울 수 있는 순간만이 가장 향기로운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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