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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의 여유와 힐링

[무릉다원, 은선동의 차 문화 산책 - 21]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8.06.30 11:05
  • 수정 2018.06.3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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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차 마시는 곳을 차실이라 한다. 다실이라 해도 상관없다. 구색 갖추어진 찻자리만을 차실이라 한다면 이 또한 벽을 만드는 일이다. 어느곳이나 차 마시는 자리를 차실이라 해도 누가 탓할 것인가?

하지만 이럴땐 찻자리라 하자. 차실(세상) 한켠, 찻자리에 홀로 찻잔을 마주하고 고요히 앉아 차 한 잔 마시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이다. 내게 주어진 세계속에 누구일 것도 없고, 무엇을 위할 것도 없으며, 어떠해야 할 것도 없는 오직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행복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자체가 행복이며 더 구할 것도 갖출 것도 없는 내가 나에게 주는 소중하고도 귀한 시간이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홀로하는 찻자리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이 여기 있다. 이를 다성 초의선사(茶聖 草衣禪師)는 찻자리의 아취(雅趣)로 신(神)이라 하였다. 공부인들도 보감 삼을 일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들이는 불공(佛供)의 정성에 소홀하다. 자칫 화려하고 예쁜 옷과 화장과 온갖 금은보석으로 치장하고, 고가의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호화주택에 사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또는 끝없는 권력과 명예, 부의 축적, 외형의 인위적 아름다움만을 꾸미는 것으로 어찌 자기에게 정성을 들인다 할 수 있겠는가? 이를 잘 사는 기준의 잣대와 삶의 행복지수로 말하는 이들이 많다. 과연 그러할까? 참으로 허망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수행자들 마저도 너무 바빠서 차 한 잔 마실 여유조차 없다하니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진정 급하고 바빠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좀 더 깊이 생각해 볼이다.

한 잔의 차향속에 차밭 구석구석이 내 한 몸과도 같이 온통 느낄 수 있으며,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그대로도 한 몸처럼 한 호흡속에 있음을 느낀다. 더하여 차의 맛과 향은 이곳 은선동의 기운과 향기 그대로이다. 맑고 순하되 감윤하고 선도 높은 강한 성정이 차의 맛과 향의 저변에 충만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편안할까? 차 한 잔 마시는 그 순간은 단 한 생각도 없이 고요에 든다. 오직 차의 향기만이 가득 피어날 뿐이다. 이는 쉼이다. 큰 쉼이다. 이같은 여유로움이 또 있을까? 더 할 것이 없는 상태 그대로! 이미 온전하니 온전하고자 함이 없게 된다. 더 치유랄 것도 없게 된다. 평온함 그 자체에 오롯하게 된다. 함께하는 차 벗 또한 그 마음을 함께 공유하고, 사족을 거두게 된다. 눈과 입가엔 미소만 가득하고, 마음자락엔 법열로 충만하니 이 어찌 행복하다 아니할 수 있을까?

이 골짜기까지 차를 마시러 오는 인연들을 대할 때면 늘 반갑다. 그런데 이분들의 대부분이 쉼이 필요한 분들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짐을 온통 안고 사는 듯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고요의 평온함이 필요한 지쳐있는 눈빛이 역력하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차 한 잔에 평온함을 느끼고 간다. 지금 부터라도 차 한 잔 마주하며 오롯하게 나를 위한 살핌과 위로의 시간을 가져보자.

부디! 맑고 향기로운 이 한 잔의 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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