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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빛같은 물줄기와 한몸

[완도의 자생 식물] 53. 어성초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8.06.25 00:10
  • 수정 2018.06.25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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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에 꽃을 달고 가는 나그네여. 맨발로 와서 꽃씨 하나 없이 여기까지 길을 만들었느냐.

삶을 생각하다 길은 떠나고 눈물을 뜨겁게 데우는 날 사랑은 푸른 강물 위에 나그네가 되었구나. 오늘도 삶을 생각하다 산속 깊은 계곡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싸리 꽃이 피는 언덕을 지나 가물었던 지난 삶도 비에 젖은 나그네가 되었다. 솔바람 이른 아침 이제는 홀로 노래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호박꽃, 나팔꽃에 맺힌 이슬을 헤치며 운명인 듯 세상 속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6월이면 장미꽃이 만발하여 인생이 따뜻해질 것 같아 장미꽃 덩굴 아래에 섰지만 쓸쓸한 나그네가 되었다.

감나무 푸른 잎사귀에 맺힌 그리운 얼굴을 찾아 나선 나그네는 먼 길을 떠나려고 한다. 계절은 한참 피어있지만 삶은 고단하다. 야생초도 슬픈 짐승들 앞에 나그네 된 발걸음은 가깝고도 멀기만 하다. 산속 음지 진 곳에 자라는 어성초는 여러해살이풀로 남도에서 많이 보이는 꽃이다. 이 꽃이 피기 시작하면 산수국도 핀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산수국은 보지 못했다.

어성초는 붉은 줄기에 이파리가 고구마 잎사귀를 닮았다. 맛이 약간 맵고 열성에 속하는 약간의 독성이 있는 약초이다. 줄기와 잎에서 생선 비릿내 같은 냄새가 난다는 뜻에서 어성초(魚腥草)라 한다. 이외에 약모밀, 십약, 중약초, 즙체 등으로 불리며 항균과 해독작용이 강하다고 한다. 어성초는 잎에서 특유의 비릿함 때문인지 농약을 치지 않아도 주변에 벌레가 접근하지 못한다. 그래서 유기농 무농약으로 재배할 수가 있다고 한다.

요즘은 집단으로 많이 재배하고 있다. 어성초는 야생초 중에서 생명력이 강하다. 어성초만큼 강한 삶에도 눈물 짙은 외로움이 있다. 마음속에서 외로움을 뽑아 꽃이 되는 날에는 향기 짙은 눈물도 아름다워진다. 산골짜기에서 마음의 풀빛을 담고 있는 삶도 언제가 개울로 흘러 강물로 넘실거릴 때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산이 되고 숲이 되어 물이 된다는 것은 아주 겸허한 언어이다. 여기에는 영롱한 햇살도 담고 있다.

이렇게 실빛 같은 물줄기가 강물이 되어 한 몸을 이루고 있다. 숲속에서 자라기를 좋아하는 어성초의 꽃잎에서 나그네 같은 향수를 느끼고 싶어진다. 숲은 영원히 그곳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꽃이 피는 즉시 떠난다. 떠나버린 그곳에 누군가 와서 또 머물다 떠나겠지. 푸른 잎새에 정(情)을 아낌없이 풀어놓는다. 그러나 정은 강물이 되어 언제가 바다로 떠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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